▶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르프리크 전명호 셰프
요즘 성수동이나 한남동 같은 이른바 핫한 상권을 걷다 보면 눈길을 사로잡는 식당이 즐비하다.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 좋은 시각적 요소로 무장한 기획형 식당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났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이런 트렌드의 격전지 성수동 한복판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단단한 성을 쌓아 올린 곳이 있다. 8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해 지금은 수제버거 마니아들의 성지가 된 내슈빌 핫치킨 버거 전문점 ‘르프리크(Le Freak)’다. 정체되거나 안주하지 않고 두세 달 단위로 신메뉴를 꾸준히 개발하며 공개하는 에피소드 시스템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쌓아 올리고 있는 르프리크는 흔한 수제 버거집들과 분명히 다른 결을 보여준다. 자본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요리에 대한 집념과 뚝심 하나로 버텨온 7년 차 오너이기도 한 전명호 셰프를 만났다.
굴곡진 요리의 꿈, 버거에 안착하다
그의 시작은 소박했다. 특목고 진학을 준비하던 중학생 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펼쳐 든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마음이 담긴 음식 이야기에 매료된 그는 특목고 대신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 진학을 택했다. 가세가 기울어 학비가 부담스러웠지만 그의 확고한 의지에 부모님도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학업을 마치고 꿈에 그리던 다이닝 주방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를 맞이한 건 낭만이 아닌 서늘한 현실이었다.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다이닝을 동경해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수습으로 주 6일을 일해도 손에 쥐는 돈은 150만 원 남짓이었어요. 집안에 생활비를 보태야 했는데 버틸 수 없는 구조였죠. 화가 났습니다."
전 셰프는 냉정하게 자신의 위치를 살폈다. 부모님이나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요리사로서 살아가기 위해선 자신의 식당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을 모아야겠다고 판단한 그는 군 제대 후 호주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도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시드니의 유명 레스토랑 취업 약속만 믿고 호주에 도착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지연되자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농장으로 가 딸기를 땄고, 이후 멜버른의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악착같이 일했다. 수셰프와 헤드 셰프를 거치며 2년간 모은 돈은 불과 4,000만 원 남짓이었다. 201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호주에서 번 돈을 종잣돈 삼아 성수동 골목에 작은 매장을 열었다. 그가 선택한 메뉴는 버거였다.
“다양한 요리를 해왔지만 버거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때 가진 자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판단했죠. 오븐 같은 고가의 기물 없이도 튀김기와 철판만 있으면 할 수 있었거든요. 브런치도 하고 다이닝 요리도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선택이었죠."
메뉴 변경만 41번째
번듯한 브랜딩 에이전시나 디자이너를 고용할 여유도 없었다. 그는 직접 르프리크의 시그니처가 된 닭 모양의 로고를 만들고 가게의 모든 콘셉트를 직접 기획했다. '괴짜'를 뜻하는 르프리크라는 이름 역시 평소 즐겨 듣던 디스코 음악의 제목에서 따왔다. 주변에서 이름이 어렵다고 만류했지만 버거라는 장르 안에서 틀을 깨며 유쾌한 반란을 꿈꾸던 그의 결심은 단호했다.
르프리크를 단순한 수제버거집을 넘어 독보적인 브랜드로 격상시킨 일등 공신은 에피소드 시스템이다. 전 셰프는 매장 오픈 때부터 스스로에게 가혹한 규칙을 하나 부여했다. 시그니처 버거를 제외한 스페셜 버거와 사이드 메뉴를 정기적으로 완전히 갈아엎는 것이다. 초기에는 2개월, 현재는 3개월 주기로 바뀌는 이 에피소드는 어느덧 41번째를 맞이했다. 그동안 메뉴가 겹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매일 똑같은 메뉴만 만들면 저도 팀원들도 금방 번아웃이 올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메뉴를 바꿀 때마다 동선이 꼬이고, 식재료 수급이 달라지고 힘도 들고 손해도 보죠. 하지만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작하고 경험해야 내가 하는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전 셰프에게 버거는 단순히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 먹는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그의 요리적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하얀 캔버스다. 아이디어는 국적과 문화, 형식을 가리지 않는다. 쌀국수 버거가 대표적인 예다. 쌀국수 육수를 응축해 소스로 만들고, 면 대신 라이스페이퍼를 두 장 적셔 버거 안에 덮어 식감을 살려냈다. 최근에는 한식 반찬을 버거의 토핑으로 얹기도 했다.
“버거의 가장 큰 매력은 문턱이 낮다는 점입니다. 평소라면 낯설어서 시도하지 않을 식재료나 다이닝 수준의 복잡한 조리법도 버거로 담아내면 손님들이 거부감 없이 즐겁게 드시더라고요. 제가 동경하고 경험했던 좋은 미식의 세계를 버거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 그것이 제가 요리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큰 기쁨입니다.”
그의 철학은 서비스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8평 가게 시절부터 자리에 앉는 손님에게 따뜻한 물수건을 제공하고 음식이 나오면 세심한 설명을 곁들였다. 효율과 회전율이 생명인 버거집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전 셰프는 자신이 파인다이닝을 다니며 동경했던 환대의 디테일을 구현해냈고 이는 르프리크만의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 정체성이 됐다.
"자녀 손잡고 오는 버거집 됐으면"
르프리크의 시그니처인 치킨 패티는 오직 14호 닭을 공급받아 사용한다.
국내 시장은 삼계탕용 작은 닭(12호)과 순살 가공용 큰 닭(16호) 위주로 유통되기 때문에 정확히 14호 사이즈를 맞추는 것은 단가도 높고 수급도 까다롭다. 하지만 번의 크기와 밸런스를 맞추고 최상의 식감을 내기 위해 그는 원가 상승의 압박 속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는다. 버거의 번 역시 맞춤 주문을 통해 매일 받아 사용한다.
원가율이 높고 품이 많이 드는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매장을 3개까지 늘렸는데도 수익은 밖에서 보는 것만큼 화려하지 않다. 그가 이 힘든 짐을 짊어지고 쉼 없이 달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함께 땀 흘리는 동료들 때문이다.
“혼자였다면 이렇게까지 사업을 키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저를 믿고 함께해 준, 이제는 5, 6년 차가 된 팀원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르프리크라는 우산 아래에서 성장하고 언젠가 자신만의 매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 가장 큰 목표입니다.”
그는 최근 대형 식음료 기업이 주최한 버거 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동안 보이는 것보다 본질에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브랜드의 생존과 직원들의 미래를 위해 세상 밖으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는 책임감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전 셰프가 최종적으로 꿈꾸는 미래는 화려한 엑시트가 아니라 '버거 노포'다.
“한국에서 양식을 하는 식당 중에선 의외로 오랜 시간 살아남은 브랜드가 별로 없어요. 저는 르프리크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네에 남아있는 식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저희 버거를 맛있게 드시던 어린 손님들이 나이를 먹고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곳. 그렇게 50년 넘은 버거집으로 늙어가는 상상을 합니다.”
<
장준우 셰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