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가주 대표 실내악 축제 ‘써머페스트’ 리뷰
▶ 깊고 단단한 울림… 세계적 음악가들과 나란히 선 존재감
실내악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악기는 피아노나 바이올린일 것이다. 첼로나 비올라가 그 뒤를 잇는다. 이에 비해 더블베이스는 선뜻 떠오르는 악기가 아니다. 협주곡 레퍼토리도 비교적 많지 않고, 화려한 멜로디를 맡는 경우도 드물다.
그러나 앙상블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 저음부 악기의 존재감은 더욱 선명해진다. 현악기군 가운데 가장 낮은 음역을 담당하는 더블베이스는 화성의 뿌리를 이루고 리듬의 중심을 잡으며 음악의 균형과 깊이를 만들어낸다. 독주 악기라기보다는 건물의 보이지 않는 기둥처럼 앙상블을 떠받치는 존재다.
지난 6월14일 웨스트우드에서 열린 더 뮤직 길드(The Music Guild) 주최 써머페스트(SummerFest) 무대에서 만난 더블베이시스트 전수경은 그러한 악기의 본질적 역할을 충실히 보여주었다. 올해로 21회를 맞은 SummerFest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설립된 남가주의 대표적 실내악 단체 The Music Guild가 주최하는 여름 음악축제로, 음악 애호가들에게 수준 높은 실내악 무대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포레(Gabriel Faure)의 ‘Piano Quartet No. 1 in C Minor, Op. 15’와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이 14살 때 작곡한 ‘Concerto in D minor for Violin, Piano and Strings’로 구성되었다. 특히 멘델스존의 이 작품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두 악기가 주인공으로 나서는 이중 협주곡으로, 현악 앙상블이 이를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전수경은 첼리스트 마렉 슈파키에비치(Marek Szpakiewicz)와 함께 이 곡의 저음부를 탄탄하게 구축하며 앙상블에 깊이와 무게를 더했다. 이러한 견고한 토대 위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솔로는 물론 다른 현악기들도 더욱 자유롭고 풍성한 음악을 펼칠 수 있었다.
연주 내내 돋보인 것은 그녀의 침착한 노련함과 우아한 원숙미였다. 자신보다 훨씬 긴 경력을 지닌 연주자들과 함께한 무대였지만, 전수경의 연주에는 과장도 망설임도 없었다. 앙상블 전체의 흐름을 세심하게 살피며 균형을 유지했고, 깊고 풍부한 음색으로 작품에 무게와 품격을 더했다. 특히 이 작품이 이중 협주곡인 만큼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주고받는 음악적 대화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 사이를 채우는 저음부의 우아한 개입은 객석에 미소를 안겨주었다.
전수경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음악 전체를 빛나게 하는 연주자였다. 화려함보다 균형을, 과시보다 조화를 선택한 그녀의 연주는 실내악이 지닌 협력의 미학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전수경의 조화로운 연주 덕분에 이날의 무대는 더욱 깊고 오래 남는 울림을 선사했다.
이번 무대를 이끈 연주자는 약 30년 동안 LA 필하모닉의 악장으로 활동했던 마틴 찰리푸어(Martin Chalifour)였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은퇴했지만 찰리푸어는 지휘자와 협업하던 역할을 내려놓고 오히려 더욱 자유로운 음악가의 모습으로 청중과 가까이 호흡하고 있었다. 실내악 무대에서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은 유쾌한 감동과 인간적인 친밀감을 전했고, 연주자로서 또 다른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수경에게 이번 무대는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가 새로운 음악적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함께 호흡하는 일 자체가 값진 배움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오케스트라와 앙상블, LA 오페라 등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음악적 기반을 다져온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만큼 자신만의 음악적 존재감을 구축한 전수경. 이번 무대는 그녀의 음악 인생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더블베이시스트 전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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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