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게를 머금은 나무들이 길 양편에 줄지어 서 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는 이름처럼 나무가 많아 동네 입구부터 마음이 풍성해진다. 걷다가 멈춰 선 곳은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초록 잔디를 앞치마처럼 두른 단아한 빅토리아풍 2층 집 옆에는 ‘헤밍웨이의 생가 1899’라는 팻말이 서 있고, 둥근 탑 모양 지붕이 작은 성처럼 붙어 있어 동화 속 집을 보는 듯했다.
헤밍웨이의 생가는 외할아버지가 지었으며 3대가 함께 살았다. 아버지 클리렌스는 사냥과 낚시를 즐긴 산부인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성악가였다. 어린 헤밍웨이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다섯 살까지 여자아이 옷을 입고 누나와 쌍둥이처럼 자랐는데, 그는 훗날 이 일을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세 살 때 낚싯대를, 열 살 때 사냥총을 선물 받아 평생 자연과 모험을 사랑했다. 네 살 무렵에는 새의 라틴어 학명을 250개나 외울 만큼 영민했다. 어머니에게서 예술적 감성을, 아버지에게서 자연에 대한 지식과 방랑벽을 물려받은 셈이다.
얼마 전 헤밍웨이가 열 살 때 쓴 단편이 발견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의 한 문서보관시설에서 발견된 얼룩진 노트에는 제목 없는 14쪽 분량의 육필 원고가 남아 있었다. 아일랜드의 로스 성에 일 년에 한 번 나타나 밤새 축제를 벌이다 날이 밝으면 무덤으로 돌아가는 죽은 남자 오도나의 이야기였다. 시와 문법에 관한 기록도 함께 있었다. 열 살의 아이가 먼 곳의 전설을 상상 속 이야기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놀랍다. 훗날 그는 고등학생 때 교내 신문에 6개월 동안 30편 이상의 글을 발표할 정도로 일찍부터 문학적 재능을 드러냈다.
어린 헤밍웨이는 다락방에서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이 지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곳에서 엎드려 책을 읽고, 새 이름을 외우며, 작은 창으로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햇살 사이로 떠다니는 먼지를 바라보다 상상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다락방은 어린 시절의 자잘한 기억들이 훗날 문학의 씨앗으로 자라나는 은밀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현재 헤밍웨이의 다락방은 ‘라이터 인 레지던스(Writer in Residence)’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들에게 집필 공간으로 제공된다. 나이와 경력에 관계없이 창의적인 작품을 쓰려는 사람에게 일 년간 공간을 제공한다고 한다. 내 영어 실력과 문학적 역량으로는 감히 꿈꾸기 어렵지만, 한 번쯤 그 다락방에 들어가 문향이라도 맡아보고 싶었다. 대문호가 문학의 싹을 키운 공간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가 보다.
헤밍웨이는 절제된 표현과 간결한 문체로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만들었다. 기자로 일하며 익힌 객관성과 간결성이 그의 문체를 이루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모험적인 삶과 강한 남성미로 사랑받으며 세계적인 명작을 남긴 작가, 헤밍웨이.
“그것을 하러 찾아갔다.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해내면 된다.”
헤밍웨이의 이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내가 원했던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크파크를 떠나는 길, 그 질문이 하나의 화두처럼 가슴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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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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