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포스트 특약 건강·의학 리포트
▶ 원인 다양… 노년에 생기는 정상적인 건망증 많아
▶ 수면·스트레스·호르몬 변화도 기억력 저하 원인
▶ 일상생활 지장 주거나 반복시 전문의 상담 필요
어느 정도의 건망증은 정상일까? 언제 병원을 찾아야 할까 74세의 로즈 가핀켈은 학교 청력검사 전문가로 일하던 시절 자신이 검사했던 300명의 아이들 가운데 일부의 청력검사 결과를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하지만 이제는 방에 들어가면서 왜 들어왔는지를 기억하는 일이 예전만큼 쉽지 않다. “뭔가 필요해서 왔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를 때마다 정말 당황스러워요.” 그녀는 말했다. “도대체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가핀켈은 이런 기억력 저하를 60세 무렵 은퇴했을 때 처음 느꼈지만, 지난 4년 동안 그 빈도가 훨씬 잦아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예전 같으면 머릿속에 모두 기억해 두었을 일들이 다른 곳에 기록돼 있다. 매일 해야 할 일 목록, 진료와 약속이 빼곡한 달력, 식탁 위에 나란히 놓인 약 정리함 등이 그것이다.
“저는 이런 것들을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가핀켈은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거나,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잊거나,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거나, 왜 2층으로 올라왔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 같은 사소한 일상 속 건망증은 중년이 되면 거의 누구에게나 나타난다. 또한 알츠하이머병과 다른 형태의 치매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런 증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
다행스러운 소식은 많은 기억력 저하에는 의외로 매우 평범한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걱정하기 전에 흔하면서도 상당수가 회복 가능한 여러 원인들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상적인 노화에 따른 기억력 변화
생각하는 속도가 조금 느려지고 기억을 떠올리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은 노화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다. 위스콘신 알츠하이머병 연구센터 의료책임자이자 노인의학 전문의인 나대니얼 친 박사는 “60~70대 환자들에게 안타깝지만 뇌가 예전과 똑같은 수준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증상이 미묘하고 가끔 나타나는 정도이며, 전반적인 일상생활이 잘 유지되고 있다면 지금 느끼는 변화는 병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친 박사는 여전히 재정관리를 하고, 약속을 지키며, 익숙한 장소를 잘 찾아다닐 수 있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기억력 문제보다 약간 불편한 정도의 건망증은 훨씬 걱정할 필요가 적다고 말했다.
■정말 건망증일까, 아니면 단순한 주의력 부족일까?
우리가 흔히 건망증이라고 부르는 많은 경우는 사실 기억력 문제가 아니라 집중력의 문제다. 현대인의 삶은 직장, 가족, 부모나 자녀 돌봄, 끝없이 이어지는 해야 할 일 목록 사이에서 끊임없이 주의를 분산시킨다. 여기에 스마트폰 알림과 각종 기기에서 쏟아지는 알림까지 더해지면 뇌가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고 저장하기가 어려워진다.
스탠포드대 정신의학 임상조교수이자 ‘브레인스톰: 스탠퍼드 정신건강혁신연구소’ 설립자인 니나 바산 박사는 기억은 나중에 떠올리기 전에 먼저 저장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주의가 산만하면 애초에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다”며 “그러면 제대로 저장되지도 않았던 정보를 찾으려 애쓰다가 자신의 기억력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면 부족과 기억력의 관계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 자고 있는지다. 수면 중에는 뇌가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한다. 연구에 따르면 단 하룻밤이라도 6시간 미만으로 잠을 자면 기억 형성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필라델피아 정골의과대학 노화성 만성질환센터장인 브라이언 J. 베일린은 60~70대는 수면이 더 자주 끊기고 밤중에 여러 번 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거나 가정과 직장에서 바쁜 중년층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충분히 많다고 설명했다.
연구들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불면증, 치료받지 않은 수면무호흡증 같은 수면장애가 기억을 굳히는 과정을 방해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집중하며 주의를 기울이고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 문제도 기억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폐경 전후와 폐경기에 나타나는 호르몬 변화도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기억과 실행기능을 담당하는 해마와 전전두엽에는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많이 존재한다. 에스트로겐 수치가 감소하면 여성들은 사고 속도가 느려지고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고 바산은 말했다.
브라운대 알츠하이머병 연구센터 부센터장이자 버틀러병원 기억·노화 프로그램 책임자인 테드 휴이는 폐경이 기분에도 영향을 미치며, 이는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을 꺼내오는 효율성에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우울증, 치료받지 않은 난청, 갑상선 질환, 비타민 B12 결핍 등도 기억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약물의 부작용도 원인이 될 수 있다.
■ 건망증 때문에 언제 병원을 찾아야 할까?
건망증이 단순한 노화를 넘어 심각한 문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친 박사는 세 가지를 살펴본다고 말했다.
▲증상이 가끔이 아니라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해서 나타나는가?
▲스스로 마련한 대처 방법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가? 예를 들어 현관 옆 같은 그릇에 항상 열쇠를 두기로 했는데도 계속 잃어버린다면 걱정할 만한 신호다.
▲심한 스트레스를 주거나 일상생활에 실제로 지장을 주는가?
전문가들은 무엇을 잊는지도 중요하게 본다. 대화 도중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잠시 잊는 것과 아예 그런 대화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후자가 훨씬 심각하다.
휴이는 어느 정도 건망증이 반드시 위험 신호는 아니라는 점을 알고 안심하더라도, 걱정되는 변화가 있다면 의료진에게 반드시 이야기하라고 권한다. 특히 시력, 수면, 실행기능에 갑작스럽거나 심한 변화가 나타나거나, 처음으로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 진단을 받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는 “신경퇴행성 질환은 기억력 외의 다른 증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검사를 통해 정상적인 노화와 치매를 구분할 수 있으며, 그 중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MCI)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경도인지장애는 인지기능에는 문제가 있지만 일상생활은 여전히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친 박사는 경도인지장애는 갑상선 질환부터 수면무호흡증까지 다양한 원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도인지장애 환자 가운데 일부는 치매로 진행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는 “따라서 이 단계에서 환자를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생활습관 개선을 시작하기에 매우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규칙적인 운동, MIND 식단, 건강관리, 인지능력을 자극하는 활동, 사회적 교류와 같은 비교적 작은 생활습관 변화만으로도 뇌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 수면 문제를 해결하고 정신건강 치료를 받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바산 박사는 “치료받지 않은 우울증은 치매와 매우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며 “보청기가 필요하다면 꼭 착용하라”고 말했다.
한 연구에서는 보청기 착용이 고위험 노인의 인지기능 저하 위험을 거의 50%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친 박사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정신을 자극하는 활동을 통해 “뇌의 신경망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을 권했다. 새로운 언어나 악기를 반드시 배울 필요는 없다. 그는 “퍼즐을 풀거나, 단어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카드놀이를 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휴이는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위한 새로운 약물들이 희망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 약들은 질병의 가장 초기 단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늦게 병원을 찾는 환자들을 자주 본다고 했다. 약속을 잊고, 길을 잃기 시작한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는 이미 해당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 뒤라는 것이다.
가핀켈은 이미 이러한 생활습관 가운데 많은 것들을 실천하고 있다. 그녀는 일주일에 닷새 운동을 하고, 대부분 건강한 식사를 하며, 매일 뜨개질을 한다. 특히 새로운 기법을 배우는 도안을 일부러 선택한다. 매일 저녁에는 단어 게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매년 그녀의 주치의는 다섯 개의 단어를 기억하는 회상 검사를 실시한다. 올해는 처음으로 한 단어를 틀렸다. 하지만 주치의는 걱정하지 않았고, 결국 가핀켈 역시 지금으로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면서, 가끔 방에 들어갔다가 왜 들어왔는지 잊어버리는 일쯤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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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had O’Con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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