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은 골프만 치는 곳일까?
푸른 잔디와 정원이 어느 날 품격 있는 음악회장이 된다면 어떨까.
지난 7월3일 남가주 마르베야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마르베야 써머 수아레(Marbella Summer Soiree)’는 자연과 클래식 음악, 그리고 지역사회를 하나로 이어준 특별한 여름밤이었다.
이번 음악회는 일본에 이어 미국에서도 폭넓게 골프 비즈니스를 펼쳐 온 유신일 회장이 실천해 온 문화 나눔의 연장선에 있었다. 지난 1월 PGA 웨스트에서 지휘자 금난새를 초청한 데 이어, 이번에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장성과 YASMA 체임버를 초청해 회원뿐 아니라 재향군인 가족 등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문화의 장을 마련했다. 클래식 음악이 누구나 함께 누릴 수 있는 예술임을 보여준 뜻깊은 시도였다.
실내악은 원래 궁전이나 귀족 저택의 작은 방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며 발전한 음악이다. 그래서 공연장처럼 계산된 음향이나 완벽한 잔향을 기대하기 어려운 야외에서의 연주는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음악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연주자들의 기량과 서로를 향한 신뢰, 그리고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앙상블의 힘이다.
리허설은 가든그로브 성공회교회(토마스 리 신부)와 마르베야 컨트리클럽 그린룸에서 진행되었다. 두 곳 모두 음향만 놓고 보면 야외보다 훨씬 아름다운 울림을 품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야외 공연만이 주는 자연과의 호흡은 콘서트홀과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가장 감탄한 것은 장성의 지휘였다. 지휘자는 서로 다른 개성과 마음을 하나의 음악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그의 리드에 따라 단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결국 함께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음악의 힘,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앙상블은 연주자들의 실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의 음악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지휘자의 손끝에서 음악은 화합이 되었고, 그 화합은 연주자들의 표정 속에서 웃음으로 이어졌다.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무렵, 무대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로 문을 열었다. 장성은 솔로에 이어 17명의 챔버 오케스트라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피아노 협연과 지휘를 동시에 맡아 연주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 작품을 소규모 챔버 편성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작품의 구조와 균형을 새롭게 설계하는 또 하나의 창작이다. 관객의 눈에는 연주자들만 보이지만 장성을 비롯해 에스터 리와 클레어 김 등 편곡에 참여한 음악가들의 보이지 않는 헌신과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무대였다.
YASMA 체임버는 인상적인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악장 최희선은 물론, 첼리스트 김원선, 바이올리니스트 박재은 등 경험 많은 연주자들이 중심을 잡고, 젊은 연주자들이 새로운 에너지를 더하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완성했다. 1부는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음악으로 노래했던 베토벤의 작품으로 독립기념일의 의미를 되새겼고, 2부에서는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드보르작, 그리그의 유명 작품들로 독립을 축하했다. 또 앵콜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 연주되었을 때는 관객들도 박수로 리듬을 맞추며 공연의 마지막을 함께 완성했다.
비영리단체 YASMA7은 남가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가들에게 더 많은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와 클래식 음악을 잇는 문화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다. 한 번의 공연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무대는 연주자에게는 성장의 기회를, 관객에게는 음악이 일상이 되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번 ‘마르베야 써머 수아레’가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 번의 공연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젊은 음악가들에게 또 하나의 무대가 열렸다는 점,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 골프장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지역사회와 자연스럽게 만났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문화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히 이어질 때 비로소 지역사회의 자산이 되기에 이러한 문화 나눔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공연이 끝난 다음 날부터 관객들의 따뜻한 인사와 감사의 메시지가 연주자들에게 전해졌다. 음악에 공감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한마디 한마디는 무대 위의 연주자들뿐 아니라 공연을 함께 만든 스태프와 주최 측 모두에게 무엇보다 큰 보람으로 전해졌을 것이다.
공연은 끝났지만, 음악은 끝나지 않았다.
좋은 공연은 막이 내리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무대를 기다리게 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번 ‘마르베야 써머 수아레’가 그랬다. 앞으로도 이러한 무대가 젊은 음악가들에게는 꿈을 키우는 디딤돌이 되고, 지역사회에는 클래식 음악이 더욱 가까워지는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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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