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극과 극을 달렸다. 처음에는 “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매우 화가 나 있다”더니 폐막 직전에 가서는 “굉장히 성공적인 회의였고 엄청난 단합이 있었다”고 바뀌었다. 최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개최된 나토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도 나토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몰아붙였다. 지난해 헤이그 나토 정상회의에서는 동맹국을 압박한 끝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국방비 증액 약속을 받아냈다. 올해는 상황이 더 복잡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월 그린란드를 탐내면서 시작된 갈등으로 나토 핵심 국가들이 사실상 그린란드 수호를 위한 연합훈련까지 개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 미국이 대이란 공습으로 전쟁을 시작한 후 지속해서 나토의 참전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나토 탈퇴 가능성과 유럽 주둔 미군 감축 계획을 발표하는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작된 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의 “나토는 이란 문제에서 우리를 돕지 않으려 했다”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는 그린란드에 대해서도 “미국에는 매우 중요하지만 덴마크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강변했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다음과 같이 미국이 원하는 것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첫째, 방위비 증액의 실질적 이행을 확인받았다. 정상회의 선언문 2항은 나토 동맹국의 대폭 확대된 국방 투자를 명시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미국을 제외한 나토 국가가 투자를 1390억 달러 이상 늘렸고 앙카라에서 500억 달러 이상의 신규 조달이 추가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숫자로 검증된 셈이다. 그는 실제로 폐막 회견에서 “회원국들이 GDP 5% 목표를 향해 진전하고 있다”며 “일부 국가들이 진정으로 부름에 응답했다”고 평가했다.
둘째, 우크라이나 부담의 유럽 이전이 문서로 굳어졌다. 선언문 4항은 ‘유럽 동맹국과 캐나다가 이제 대우크라이나 안보 지원의 대부분을 재정 지원하고 있다’고 명시했고 2026년 700억 유로와 2027년 최소 동등 수준의 지원을 약속했다. 미국은 빠졌다.
셋째, 무기 판매라는 상업적 실익을 얻어냈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 국방비 증액을 미국산 무기 수출 확대로 긴밀히 연결한다는 복안 아래 이번 회의를 설계했다.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생산 라이선스를 주기로 결정한 것도 겉보기에는 우크라이나의 승리지만 미국 방위산업 기업에는 로열티와 공급망 수익이 돌아가는 거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의 호위함·잠수함·초계함을 포함한 방산 협력 논의와 이재명 대통령과의 군용 선박 건조 협의까지 포함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앙카라를 사실상 ‘방산 세일즈의 장’으로 활용한 셈이다.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앙카라에서 돈(증액 이행), 부담 전가(우크라이나), 시장(방산 수출)을 모두 얻었고 그 대가로 내준 것은 집단방위를 공약한 북대서양조약 제5조 재확인이라는 선언적 언사뿐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운 장면까지 포함하면 유럽이 ‘달래기’의 대가로 지불한 청구서가 상당했던 회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나토 정상회의를 바라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 미국은 한국을 향해서도 꾸준히 책임과 분담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한반도 유사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고 미국은 핵심이지만 제한된 지원만 하겠다고 올 1월 국방 전략서에 명시했다. 더욱이 지난해 헤이그 정상회의에 이어 이번 앙카라 선언에서도 북한에 대한 언급이 사라졌다. 이는 2024년 워싱턴 나토 정상회의와 극명히 대비된다. 당시 정상 선언문에는 북한이 러시아 침략 전쟁에 군사 지원을 한다고 명시하면서 이것이 유럽·대서양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며 국제 비확산 체제를 훼손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충실하고, 북한 비핵화 논의가 실종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의 안보는 이중으로 위협받고 있다. 동맹의 가치가 거래로 환산되는 시대, 한국은 미국의 청구서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킬 능력과 협상의 지렛대를 먼저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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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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