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학교 일을 끝내고 잠시 산타 모니카 피어(Pier)를 방문했다. 많은 사람이 한 표지판 앞에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는 “Route 66 End of the Trail”이라고 적혀 있었다.
Route 66은 1926년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지도록 지정된 미국의 대표적인 도로이다. 오늘날에는 자동차 여행과 자유, 모험을 상징하는 낭만적인 길로 알려져 있지만, 그 길에는 미국 현대사의 아픔도 깊이 새겨져 있다.
특히 1930년대 대공황과 더스트 보울(Dust Bowl)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많은 농민이 새로운 일자리와 삶을 찾아 이 도로를 따라 서부로 이동했다. 그들에게 Route 66은 관광을 위한 길이 아니라 가족의 생존을 걸고 떠난 피난과 희망의 길이었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1939년)는 오클라호마에서 농장을 잃은 조드 가족이 낡은 트럭에 모든 살림을 싣고 Route 66을 따라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이야기이다. “캘리포니아에는 일자리가 많고 높은 임금을 준다”는 전단지를 믿은 조드 가족은 낡은 트럭 한 대에 전 재산을 싣고 Route 66을 따라 서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긴 여정 속에서 가족들은 굶주림과 질병, 가난을 견뎌야 했다. 어렵게 캘리포니아에 도착하지만, 이미 수많은 이주민이 몰려와 일자리는 부족하고 임금은 형편없이 낮았다. 농장주들은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시키며 착취했고, 경찰과 지역 사회도 이주민들을 냉대했다.
톰은 점차 개인의 생존보다 사회 정의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노동운동가였던 전직 목사 짐 케이시(Jim Casy)가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다 죽는 모습을 본 뒤, 톰은 그의 뜻을 이어받아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가족을 떠났다. 소설은 홍수로 모든 것이 무너진 가운데, 조드 가족의 딸 로즈 오브 샤론(Rose of Sharon)이 굶주려 죽어가는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젖을 먹여 생명을 살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소설에서 ‘로즈 오브 샤론’은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잃고 절망을 경험하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젖으로 굶주린 사람을 살린다. 아름다움의 상징이 희생과 생명의 상징으로 변화한다.
존 스타인벡은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포도』를 그의 대표작으로 기억하며,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의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그러나 출간 당시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대농장주와 일부 정치인들은 작품이 미국을 왜곡하고 사회주의를 선전한다고 비난했고, 어떤 지역에서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거나 공개적으로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분노의 포도』는 미국인의 삶과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깊이 있게 그려 낸 소설로 인정받고 있으며, 미국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전이 되었다. 존 스타인벡의 고향인 살리나스(Salinas)에 있는 국립 스타인벡 센터(National Steinbeck Center)와 그의 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시실을 둘러 보면서 미국의 위대함은 잘못이 전혀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을 통해 자신의 모순과 아픔을 돌아볼 수 있다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 스타인벡의『분노의 포도』는 오늘날에도 고향을 떠나는 이주민과 난민,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존 스타인벡이 ‘어머니 길’(Mother Road)이라고 표현한 Route 66의 최종 목적지는 캘리포니아였지만, 조드 가족은 그 여정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법과 인간의 존엄을 배우게 된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이웃과 연대하며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길이었다. 조드 가족은 모든 것을 잃어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며, 끝까지 가족을 지키려 한다. 진정한 희망은 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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