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금년에 미국 건국 250주년을 지내면서 대한민국을 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둘러싼 논쟁은 오랫동안 이념과 진영의 대립으로 점철되어 왔다.
한쪽은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1919년 4월 11일)을 건국의 출발점으로 본다. 다른 한쪽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을 실질적인 대한민국 건국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쟁은 흔히 ‘김구 대 이승만’이라는 인물 대결로 단순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승만은 1919년을 버리고 1948년의 새 나라를 만들자고 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법통을 강하게 강조했다. 이승만은 국회 개회사와 관보 제1호에서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으로 인쇄하며, 1948년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1919년의 독립운동과 연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에게 1919년과 1948년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1919년은 대한민국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를 설명하는 역사였고, 1948년은 그 대한민국이 어떻게 현실의 국가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였다.
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는 미·소 대립 속에서 통일정부 수립에 실패했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접근이 북한 지역에서 거부되자, 남한에서는 유엔의 감시 아래 선거가 실시되었고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1948년 7월17일 헌법이 제정되고 두달 뒤인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다. 그해 12월 유엔 총회 결의 195호는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선거를 관찰할 수 있었던 지역에서 자유의사에 기초해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했다.
김구는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다. 그는 분단된 상태의 정부가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이 아니라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김구는 대한민국 건국에 한발 물러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통일정부 이상(理想)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깊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김구의 이상과 1948년 대한민국의 국가 수립은 구분되어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의 탄생에는 유진오와 제헌국회의 역할도 있었다. 헌법 초안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는 ‘정신적 건국’과 ‘실질적 건국’의 모순을 헌법 전문에 ‘건립(1919)’과 ‘재건(1948)’이라는 단어로 녹여냈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을 단순히 1948년에 새로 만들어진 국가로 규정하지 않았다. 3·1운동과 임시정부로 이어지는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헌법에 의해 작동하는 국가체제를 세웠다. 여기에 대한민국 건국의 핵심이 있다.
1919년 3·1운동은 한국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거부하고 독립국가의 주권을 선언한 위대한 사건이었다. 그 정신은 같은 해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이어졌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민주공화제의 국가 이념을 제시했고,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은 그 역사적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국가를 선언하는 것과 실제로 국가를 통치하는 국가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같은 차원의 사건이 아니다.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법통과 독립운동의 중심이었지만, 일제의 지배 아래 영토를 통치하거나 국민 전체에 행정권을 행사할 수는 없었다. 1919년이 대한민국의 역사적 기원이었다면, 1948년은 그 기원이 헌법과 정부를 갖춘 현대적 국가체제로 현실화된 해였다.
이 역사의 한복판에는 이름 없는 재미동포들의 헌신도 있었다. 하와이의 사탕수수밭과 캘리포니아의 오렌지농장에서 일하던 한인들은 하루 품삯 1달러를 쪼개어 독립운동에 보탰다.
그들에게 독립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었다. 수많은 이름 없는 동포들의 희생과 헌신이 1919년의 독립운동을 지탱했고, 그 염원은 마침내 1948년 헌법과 정부를 갖춘 국가로 현실화되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어느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이승만의 정치적 결단, 김구가 상징한 역사적 정통성, 유진오와 제헌국회의 헌법적 노력, 그리고 국내외 동포들의 희생이 겹쳐져 이루어진 역사적 결과였다. 이제 대한민국은 건국일을 둘러싼 소모적인 진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만 국가의 기념일은 역사적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실제로 출범한 날은 1948년 8월 15일이다. 기원과 건국을 혼동하지 말자. 이제 대한민국은 1919년의 역사적 법통을 기억하면서, 1948년 8월 15일을 당당히 대한민국의 건국절로 기념할 때가 되었다.
이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그날을 국내외의 온 한민족이 하나 되어 기념하고, 후손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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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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