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시카고 트리뷴에 실린 한 부고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꽃 대신 공화당원들에게 신랄한 편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처럼 비교적 점잖은 수준의 당파성에서 우리는 이제 그레이엄 플래트너의 애초부터 우스꽝스러웠던 연방상원의원 선거운동이 길고도 지리하게 무너져 내리는 광경에 이르렀다.
그의 명성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그를 메인주에서 연방상원의원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전국적 인사들의 명성 역시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 플래트너 사태는 두 가지 명제를 입증하는 방대한 증거의 에베레스트산 가운데 극히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
첫째, 민주당은 더 이상 자신들의 업, 즉 정치에 능숙하지 않다. 미국에서 정치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양한 대륙 규모 국가의 여러 집단을 엮어 다수 연합을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둘째, 미국은 건강한 정당 하나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한쪽이 자기 진영의 극단주의와 어리석음이 스며드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다른 쪽도 기준의 붕괴를 즐기며 똑같이 행동하게 된다.
플래트너의 선거운동은 민주당의 정체성 정치에 대한 집착을 관통하는 냉소주의에서 태어났다. 플래트너가 무례한 인간이며 그의 경력은 부모에게 얹혀산 기록보다도 빈약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그를 한 개인으로 평가하기보다는 하나의 범주를 구현하는 존재로 추켜세웠다. 바로 노동계급이다.
그는 민주당이 가장 좋아하는 존재, 즉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그는 민주당의 단순한 이분법, 즉 ‘억압자’와 ‘피억압자’ 구도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 미국 노동계급에 대한 자신들의 모욕은 인식하지 못한 채 민주당은 왜 과거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사람들이 등을 돌렸는지 의아해한다.
그러나 공화당 역시 플래트너 사태 이후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10년 전 공화당은 ‘액세스 할리웃’ 녹음파일의 저속한 스타이자 포르노 배우 애인에게 입막음 돈을 지급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유명인 숭배에서 비롯된 포퓰리즘이 만들어낸 그 인물은 오늘날 자신의 능력을 한참 벗어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사위와 뉴욕의 부동산 측근이 힘을 합쳐 이란을 안정시키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없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계속 늘어나는 미국의 수치스러운 일들은 포퓰리즘이라는 거름에서 자라난 무성한 잡초들이다. 그리고 정치에서 인격의 중요성을 본질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으로 경멸하는 포퓰리즘의 특성 역시 그 거름의 일부다. 포퓰리즘은 며칠 전 미국이 잠시, 그리고 종종 그 의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기념했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거부했던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냉철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오래가지 못한 공화국들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고, 민주주의와 불신을 결합한 정교한 헌정 구조를 설계했다. 그들은 포퓰리즘에 맞서는 방파제를 세웠다. 그들이 믿은 것은 이것이었다. 최종적으로는 다수의 의사가 지배해야 하지만, 그 의견은 제도를 통해 걸러지고 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제도는 ‘공화주의적 덕성’을 가진 사람들이 운영해야 한다. 그런 자질은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건국 정신을 움직인 힘은 미국식 포퓰리즘의 반대말이었다. 포퓰리즘은 대중의 열정을 찬양한다. 그리고 그 열정은 제약받지 않는 행정부에 의해 자극되고 곧바로 행동으로 전환된다.
오늘날 포퓰리즘의 역설은 그것이 ‘국민’이 아니라 규모는 작지만 강렬하고 결집된 소수 집단에게 권한을 준다는 점이다. 그들은 양당의 후보 선출 예비선거를 지배한다. 그들은 ‘플래트너 상원의원’이라는 발상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8월4일 미시간주 민주당 연방상원의원 후보 지명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과 어울리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인물에게 줄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공화당이 링컨의 자리에 불과 한 번의 심장 박동 거리만큼 가까운 위치에 누구를 올려놓았는지도 보라. J.D. 밴스 부통령을 생각해보라. 그는 비록 일관되지는 않지만 백인우월주의자이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이며 반유대주의자인 닉 푸엔테스에게 호의를 보여 왔다. 푸엔테스는 사악한 유아성이 결코 모순어법이 아님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밴스는 편협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사람이다. 푸엔테스는 밴스의 친구인 터커 칼슨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길고 우호적인 대화를 나눴다. 칼슨은 찰리 커크의 추모식에서 커크 암살의 책임이 예루살렘에서 후무스를 먹으며 둘러앉아 있는 ‘어떤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다고 암시했다. 즉 유대인을 지목한 것이다. 밴스는 푸엔테스 같은 사람들이 보수 운동에 설 자리가 없어야 한다는 요구를 ‘순수성 검증’이라며 고상하게 거부했다.
밴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배척하는 데 시간을 쏟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링컨, 아이젠하워, 레이건의 정당에서 반유대주의를 제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그의 목록을 한번 보고 싶다.
민주당 포퓰리스트인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상원의원, 그리고 수많은 포퓰리스트 도덕주의자들이 플래트너를 따뜻하게 껴안는 태도를 마침내 거두게 만드는 데에는 엄청난 스캔들의 지렛대가 필요했다. 반면 미국의 두 번째로 높은 선출직 공직자는 공화당 포퓰리스트이며, 그는 원칙의 문제로서 자신의 정당이 지닌 다양성 안에 미국 정치의 늪에서 나온 찌꺼기들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공정하다고 옹호한다.
어느 정당도 2028년 유권자들에게 제기되어야 할, 선거를 규정하는 질문을 던질 것 같지는 않다. “당신은 미국의 불쾌한 최근 과거와 피곤한 현재가 앞으로도 예측 가능한 미래가 되기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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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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