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홍수 사건은 단순한 자연재해 사건이 아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하는 끔찍한 자연재해로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이 사건은 기후변화와 깊이 연결된 재난이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인류는 끊임없이 같은 자연재해의 반복으로 인해 끝이 없는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9월 1일자 가디언에 기고된 저명한 기후학자 마이클 만(Michael Mann)의 글에 따르면, 네팔 홍수 사건은 이번 여름 내내 지구가 보내고 있던 경고를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그는 기후 귀속과학(attribution science)을 설명하며, 이제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기후 귀속과학은 특정 재난이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했는가’를 단순히 묻기보다,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가 그 재난의 발생 가능성과 강도를 얼마나 높였는지를 분석하는 과학이다. 마이클 만에 의하면, 기후변화는 재난을 무에서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위험을 더 위험한 쪽으로 기울인다고 말한다. 마이클 만은 독자들에게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몰라서 행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기후행동을 보이라고 촉구한다.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기후변화의 가장 두려운 요소를 설명하는 용어가 있다. ‘복합•연쇄 위험(compound and cascading risks)’이라는 용어다. 빙하 붕괴와 수력발전, 산불과 홍수, 폭염과 가뭄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하나의 재난을 크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서로 다른 위험들을 연결하는 시스템적 위험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서 우리를 더 두렵게 하는 것은 기후 재난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재해를 극복할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재난이 연속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 국가에 실질적인 부담을 안겨준다. 국가 경제에 손실을 일으키고, 무엇보다 취약한 계층에 피해가 집중되면서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것은 자연의 폭동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갈등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자연의 불안정성이 사회의 불안정성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선진국들은 이러한 기후위기와 동시에 AI 경쟁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에서 열리고 있는 G20 기술장관 회의에서 미국 정부는 각국에 AI 규제를 최소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른바 “Carolina Principles”를 제시하며 새로운 규제기관 신설을 피하고, 기존 규제로 해결되지 않는 새로운 문제에만 추가 규제를 적용하며, AI 기초연구와 민간투자를 장려하자는 내용이다. 이에 반해 캐나다 등 일부 국가는 혁신과 함께 사회적 신뢰(public trust)와 안전(safety)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 AI 질서가 기술 경쟁만이 아니라 규제 철학의 경쟁으로 들어가고 있다.
AI 담론이 규제 철학의 경쟁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AI가 일을 수행하기 시작하자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해킹하면 누가 책임지는가. AI가 일을 빨리 하면 그 경제적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AI가 글을 쓰면 저자는 누구인가. AI 규칙은 국가가 정하는가, 기업이 정하는가. 이러한 실질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Morgan Stanley, Citigroup, Goldman Sachs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주요 로펌에 AI로 얻은 효율성만큼 법률비용을 낮추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법률 리서치와 문서 검토 같은 업무가 AI로 빨라지고 있는데도 기존의 시간당 청구제도(billable hour)가 유지되면서 고객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느냐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일의 가격”이 바뀌는 것이다. 예전에는 시간이 곧 가치였다. 하지만 AI가 10시간 걸리던 일을 1시간에 수행하면, 시간당 보수를 기반으로 한 전문직의 경제 모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새로운 능력을 만드는 동시에 책임의 위치를 재편하고 있다.
AI 시대의 위기는 인간이 필요 없어지는 데 있지 않고, 인간이 책임을 회피하기 쉬워지는 데 있다. “AI가 그렇게 판단했다”, “알고리즘이 그렇게 추천했다”는 말은 앞으로 책임을 피하는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AI 시대의 인간론은 인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책임질 수 있는 존재,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다시 정의하는 방향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책임의 인간론에서 AI와 기후변화가 만난다. 기후위기는 우리가 만든 세계에 대해 책임질것을 요구하고, AI 시대는 우리가 만든 기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두 시대적 변화가 동시에 인간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너는 네가 만들어낸 세계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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