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초본에 적힌 유년기 주소만 한 쪽이 넘어가는 것은 가친의 직업과 무관치 않다. 경찰관으로 재직한 부친은 직할시, 소도시, 읍·면소재지 경찰관서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고, 나도 12세까지 주소를 아홉 번 바꿨다. 지서 근무 땐 관사에 들어갔고, 도심 본서·파출소 또는 인근 관할서 발령을 받으면 집을 얻었다. 덕분에 초등학교 네 곳을 다녔다. 물론 이건 다른 군경·판검사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겪었을 고충이다.
■ 요즘은 경찰관 가족이 이렇게까지 이사 다니진 않는다. 그땐 시내에서 지서까지 차로 한 시간은 걸렸고 비포장길도 있었지만, 지금은 20분도 걸리지 않으니 한 경찰서 내에선 어디든 출퇴근할 환경이 된다. 경감까지는 한 경찰서 안에 머무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공무원이면 어디든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막상 그런 인사를 당하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당장 집을 얻고 애 학교를 알아봐야 한다. 부동산·학군 중요성이 커졌으니, 공무원을 멀리 보내는 발령은 곧 이산가족을 강요하는 일이다.
■ 피의자 가족과 수사팀이 유착한 장윤기 사건의 재발을 막으려, 정부가 경찰 순환근무제 확대 방안을 내놓았다. 고위 간부가 아닌 실무자급에서도, 비연고지 인사 대상을 늘린다고 한다. 일선에선 부작용만 클 것이란 반발이 많다. 장윤기 사건은 지휘라인의 문제이기도 한데 애먼 중하위직에게 피해를 준다는 불만도 나온다. 유착 폐해가 큰 수사경과에만 도입하면 비수사 부서로 인력이 쏠리는 부작용도 있다.
■ 순환근무제는 구체적 안을 잡는 과정에서 딜레마에 봉착할 것이다. 실효성을 높이려면 수십 만 명(경감 이하 12만 명+가족)의 고충이 뒤따르고, 순환근무 범위를 줄이면 또 실효성이 없다. 잦은 이사나 주말부부 장기화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지금 논의되는 경찰개혁안이 다 그런 식이다. ‘정답’이 존재하는데, 그 정답만 피하려다 보니 자꾸 논의가 산으로 간다. 검찰에 견제권을 남길 때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음에도, “검사가 언론에 알리면 된다”거나 “민간인이 경찰을 감찰하자”는 둥 듣도 보도 못한 대책만 난무한다.
<이영창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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