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갯벌에 말뚝을 박아 세운 기적의 도시 118개의 섬을 400여개의 다리로 연결 우아하게 나아가는 곤돌라, 낭만 넘실
이탈리아 북동부, 아드리아해의 척박한 갯벌 위에 세워진 도시 베네치아. 5세기경, 이민족의 침략을 피해 도망친 난민들이 진흙 투성이 섬에 도착했을 때, 그 누구도 이곳이 훗날 지중해를 호령할 해상 제국의 심장이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네치아 인들은 아드리아해의 갯벌에 수백만 개의 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넣었다. 산소가 차단된 진흙 속에서 말뚝은 썩지 않고 화석처럼 단단해졌으며, 그 위로 대리석 판을 깔고 궁전과 성당을 올렸다. 그리하여 베네치아는 진흙 투성이 갯벌을 신세계로 만들었다.
이 기적 같은 도시의 한가운데를 거대한 S자 모양으로 관통하는 대동맥이 바로 그랜드 카날이다. 길이 2.5마일에 이르는 이 물길은 단순한 수로가 아니다. 운하 양옆으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뒤섞인 대리석 궁전들이 마치 물속에서 솟아오른 듯 끝없이 이어진다.
대운하를 중심으로 118개의 작은 섬들이 만들어지고, 이 섬들을 연결하기 위해 400여 개의 다리가 놓였다. 베네치아에서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직 배들이 물을 가르는 부드러운 파동과 다리를 오르내리는 여행자들의 발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베네치아의 다리 중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리알토 다리다. 대운하의 폭이 좁은 구간을 연결하는 이 석조 아치 다리는 16세기말, 안토니오 다 폰테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당시 미켈란젤로마저 설계를 제안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던 이 다리는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리를 지키며 베네치아 상업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리알토 주변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시장이었다. 동방에서 건너온 향신료, 실크, 그리고 아프리카의 금이 이곳에서 거래되었다.
다리를 지나 도심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면, 나폴레옹이 ‘유럽의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 극찬했던 산 마르코 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3면이 아름다운 주랑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 정면에는 비잔틴 양식의 산 마르코 대성당이 서 있다.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된 성당의 외벽은 아드리아해의 석양을 받아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눈부시다. 광장에 가득한 비둘기 떼와 오케스트라의 선율, 그리고 고딕 양식의 두칼레 궁전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이곳을 찾는 여행객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다의 리듬을 몸으로 느끼며 자란 안토니오 비발디는 이 도시가 낳은 최고의 음악가이다. ‘빨간 머리의 사제’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는 베네치아의 피에타 보육원에서 고아 소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많은 곡들을 작곡했다. 그의 명작 ‘사계’에는 베네치아의 사계절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봄날의 잔잔한 라군을 깨우는 새소리, 여름의 숨 막히는 더위와 갑작스러운 폭우, 가을의 풍요로운 축제, 그리고 겨울의 매서운 바닷바람의 선율은 모두 베네치아의 자연이 그에게 선물한 악상이었다.
그리고 세기를 건너뛰어, 독일의 위대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 역시 베네치아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중독된 예술가였다. 바그너는 베네치아에서 가장 관능적이고 비극적인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2막을 완성했다. 어두운 밤, 운하 위를 흐르는 곤돌라 사공의 구슬픈 노래를 들으며 바그너는 죽음과 사랑의 선율을 만들어 냈다.
산 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카페 플로리안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1720년에 문을 연 이곳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괴테,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같은 문학의 거장들이 이곳의 붉은 벨벳 의자에 앉아 짙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영감을 갈구했다. 카사노바가 이 카페의 단골이었던 이유 또한 흥미롭다. 당시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을 허용했던 카페가 바로 플로리안이었기 때문이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카페 앞 광장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악사들의 실외 연주가 흐르고, 여행자들은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 앉아 쌉싸름한 커피 한 잔에 베네치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베네치아의 풍경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은 단연 곤돌라다. 대운하의 수상 버스와 모터보트 사이로, 마치 검은 백조처럼 우아하게 미끄러지는 이 날렵한 배는 베네치아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역사다.
베네치아의 전성기였던 16세기에는 1만 대가 넘는 곤돌라가 운하를 가득 메웠다고 한다. 당시 부유한 귀족들은 자신의 곤돌라를 화려한 금빛과 비단으로 치장하며 부를 과시했다. 사치가 극에 달하자 베네치아 정부는 “모든 곤돌라의 색상을 검은색으로 통일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검은 곤돌라로 굳어지게 되었다. 곤돌라는 단순한 배가 아니라 고도의 장인 정신이 집약된 예술품이다. 8가지의 서로 다른 나무를 사용해 오직 수작업으로만 제작되며, 흥미롭게도 배의 구조는 좌우 비대칭이다. 사공이 오른쪽에서만 노를 젓기 때문에, 배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직진할 수 있도록 왼쪽 선체를 약간 더 넓고 길게 휘어지게 만든 것이다. 과학적 역학과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형태다.
줄무늬 셔츠를 입은 곤돌리에가 노를 저어 좁은 수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운하의 소음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기묘한 침묵이 찾아온다. 벽면의 이끼 낀 대리석에 부딪히는 잔잔한 물소리, “오 솔레 미오”를 부르는 사공의 나직한 목소리가 골목마다 메아리친다. 수백 년 동안 이 물길을 지나갔을 왕과 왕비, 천재 예술가들과 도둑들이 보았을 풍경이 바로 이와 같았으리라.
여행메모
9월10일 출발하는 탑 여행사의 서유럽투어에 참가하면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함께 여행할 수 있습니다. 탑 여행사 서유럽 투어는 10박 11일 일정으로 런던, 파리, 스트라스부로 로마, 인터라켄의 융프라우,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아말피 등을 여행합니다. 문의 (703)543-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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