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미뤄놓은 쓰레기통을 내놓으려고 아침 일찍 뒷문으로 나갔다. 새벽이슬에 젖은 연한 잔디를 먹던 잿빛 토끼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더니 잽싸게 도망쳤다. 도망가던 토끼는 불행히도 마침 집 앞을 주행하던 미니밴과 부딪히고 말았다.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토끼가 보였다. 뛰지도 기지도 못하는 토끼는 검은 아스팔트 위에서 배를 하늘로 드러낸 채 나선형으로 빙빙 맴돌고 있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매 한 마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모으고 쓰러진 토끼를 채갈 듯이 내려왔다. 그때 다른 자동차가 달려오자, 매는 그것을 피하려고 휘윅 앞집 지붕 위 모서리로 내려앉아 토끼를 응시했다. 나는 장갑을 챙기기 위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장갑을 끼고 다시 나왔을 때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토끼도 매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나로 인해 코앞에서 벌어진 약육강식의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망연자실하였다. 내가 주춤거리지 않고 바로 토끼를 살펴보았다고 해도 살릴 수 있었는지 자신이 없다. 가여운 토끼는 아침도 마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고, 한 마리 매는 따뜻한 조반을 얻었다.
쿠퍼매 (Cooper’s Hawk)는 어바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맹금류이다. 건강한 생태계에서 약한 초식동물은 강한 매에게 먹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자연에는 토끼도 살고 있지만, 맹금류도 있어 생태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몇 분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벌어진 그 일은 하루 종일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삶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이 출정에 나서는 용사처럼 찬란한 아침 햇살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부지런히 일터로 나간다. 동료보다 앞서가야 하고, 경쟁업체를 눌러야 한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삭막한 아스팔트 위 빌딩 숲에서 벌어지는 경쟁은 아프리카 세렝게티초원에서 펼쳐지는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서 적용되는 정글의 법칙과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슬픈 일들도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병을 앓고 있는 노인을 폭행했다는 뉴스나 종종 벌어지는 총격 살인 사건의 소식들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슬픈 소식이 기쁜 소식보다 자주 들리는 것이 더욱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일반 금수와 다르다. 장기기증으로 여럿의 새 생명을 남기고 떠난 이름이 없는 사람, 수만 명의 시각장애인 환자에게 무료 개안수술을 펼친 의사,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하고 순직한 소방관, 장애인 단체에 아낌없이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외에도 인간애가 가득 찬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대부분 사람이 파렴치하고 잔인한 일을 벌이는 소식에 분노하고, 따뜻한 사랑과 감동을 주는 소식에 함께 기뻐하는 것에 희망이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중히 여기는 휴머니즘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웃의 아픔에 공감해 주고, 서로의 처진 어깨를 토닥여 주는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약육강식이 진행되는 정글에서 상처받고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에도,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강자가 약자를 통제하는 집단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가 서로 상생하는 공동사회를 꿈꾸며 척박한 세상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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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종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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