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닥치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유족들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 절차와 사망신고, 상속 업무 등의 현실적 과제가 들이닥친다. 기업의 경우에는 스케일이 훨씬 크다. 정상 운영이 어려워 기업 문을 닫는 순간, 종업원들은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고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 납품 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협력 업체와 자금을 빌려준 금융기관도 곤란한 처지가 된다. 남은 자산을 모두 정리해 빚잔치를 벌이고 나서야 최종 정리가 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기다린다.
한때 국내 대형마트 업계 2위였던 홈플러스가 사망선고를 앞두고 있다. 홈플러스의 생명을 연장해왔던 인공호흡기를 떼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지난해 3월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한 지 1년 4개월 만인 이달 3일 회생절차 폐지 결정이 내려졌다. 홈플러스가 20일까지 긴급운영자금 2000억 원을 마련해 즉시항고하지 않으면 파산 수순에 들어간다.
홈플러스는 이미 빈사 상태다. 운영자금 고갈로 매장 운영조차 불가능해져 13일부터 임시 휴업에 돌입했다. ‘임시’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폐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출근했던 직원들은 갑자기 퇴근하라는 지시에 충격을 받았다. 홈플러스 내 임대 매장 2400여 곳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도 생업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홈플러스의 몰락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미래를 위한 신규 투자는커녕 알짜 부동산을 팔아 인수 차입금을 갚고 영업이익 대부분을 차입금 이자비용으로 뽑아갔다. 정부의 대형마트 영업 규제가 더해지고 e커머스와의 경쟁이 심화하면서 홈플러스는 경쟁력을 잃어갔다. 2021년부터 매년 적자를 냈고 단기 유동성이 막히며 납품 대금 정산도 제때 하지 못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앞다퉈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을 강등했고 회사는 결국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삼일PwC가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1조 원 이상 높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청산 후 자산을 매각해 채무를 변제하고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법원이 회생절차를 개시하고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승인한 것은 직접 고용 인원이 1만 2000명이 넘고 수천 개의 협력 업체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연명 치료를 하는 동안에도 인수 의향을 밝힌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납품 대금을 떼일 것을 우려해 협력 업체의 공급이 끊기자 홈플러스 매대는 갈수록 비어갔다. 우유·치즈 등 신선식품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냉장 진열대는 프라이팬과 주방 가위, 캠핑용품 등이 채웠다. 마트를 찾은 고객들은 살 게 없다며 등을 돌렸고 매출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남은 1주일 동안 홈플러스가 극적으로 2000억 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이는 연명 치료를 연장하는 수준에 그친다. 회생절차 중 발생한 임금, 세금, 물품 대금 등 우선변제 대상 채권인 공익채권만 1조 원이 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부채를 해결하고 장기적인 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시간의 문제일 뿐 질서 있는 파산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파산의 후폭풍을 막기 위한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 당장 현장 직원들과 입점 소상공인, 4000여 개 협력 업체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공언한 대로 체불임금 대지급과 저금리 생계비 융자, 협력 업체 및 소상공인 대상 긴급경영안정자금을 신속히 집행해야 한다. 자금 지원이 늦어져 이들이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마트 산업을 옥죄어온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 역시 시급하다. 이 법은 유통 업계의 주도권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뒤바뀐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골목상권 및 전통시장 보호라는 명목으로 규제를 도입했지만 결과적으로 대형마트도 죽이고 전통시장도 살리지 못했다. 홈플러스는 사망하더라도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장 참여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산업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기업 혁신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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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서울경제 생활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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