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 가득 차려진 보나로티의 예술적인 해산물 파스타 만찬(왼쪽 위). 보나로티를 찾은 유명 인사들의 추억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오른쪽 위). 1982년부터 한자리를 지켜온 이탈리안 레스토랑 보나로티 외관(아래).
여행은 꼭 비행기를 타야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워싱턴의 일상 속, 대문 밖 모퉁이 작은 식당에서도 눈부신 새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문화와 삶의 향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이 도시에서, 숨겨진‘진짜 동네 맛집’을 찾아 14편의 미각 여정을 떠납니다. 이 연재는 단순한 식당 소개가 아닙니다. 한 접시의 요리에 담긴 이주민들의 고향 기억과 뜨거운 삶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작은 문화 여행기입니다. 이제, 식탁 위에서 펼쳐지는 위대한 세계 여행의 첫 장을 함께 열어보시지요.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오히려 더 다정한 이야기가 기다릴 때가 있다.
원래 그날의 목적지는 다른 프랑스 식당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고, 운명처럼 버지니아 비엔나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보나로티’에 닿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참 행복한 우연의 시작이었다.
1982년부터 장장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보나로티는 화려함보다 안온한 편안함이 먼저 마음을 채우는 곳이다. 게다가 복잡한 비엔나 시내에서 드물게 자체 주차장을 완비하고 있어 방문하는 발걸음부터 한결 여유롭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식당 주인 세르지오가 특유의 넉넉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메뉴판을 살피던 중 ‘포르토베네레(Portovenere)’라는 지명이 눈에 들어와 과거 그곳을 여행했던 기억을 꺼내놓자, 그의 표정이 이내 소년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포르토베네레가 바로 제 고향입니다.” 마침 몇 주 뒤 고향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들뜬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의 말에, 식탁 위로 리구리아 해안의 눈부신 풍경과 아련한 추억들이 향긋하게 피어올랐다. 단순한 요리 이야기를 넘어 사람의 인생이 식탁으로 걸어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이날 식탁에 오른 메뉴는 그의 고향 이름이 새겨진 ‘스파게티 알로 스코글리오 포르토베네레’와 바다를 담은 ‘린귀니 프루티 디 마레’였다. 접시에 넉넉하게 담겨 나온 파스타는 신선한 조개와 홍합, 오동통한 새우가 가득해 풍성한 바다 향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쌌다. 과장된 장식을 덜어내고 재료 본연의 맛을 정성스레 살린 요리에서는 오랜 세월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깊은 내공이 느껴졌다.
그동안 맛본 파스타 중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한 이 훌륭한 만찬을 점심에는 $25 안팎, 저녁에는 $35 안팎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 또한 이곳의 큰 미덕이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친 뒤에도 세르지오는 한동안 고향 이야기를 정답게 이어갔다. 여행자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관광지일 뿐인 그곳이 그에게는 유년의 추억과 가족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참 좋은 식당은 단지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만을 뜻하지 않는다. 음식 한 접시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다정하게 연결되고, 서로가 지닌 이야기를 서스럼없이 나누게 만드는 공간이다.
프랑스 식당을 향해 떠났던 길의 끝자락에서, 나는 뜻밖에도 이탈리아 리구리아 해안의 싱그러운 바람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 이탈리아인의 따스한 온기를 만났다. 그날 마음 깊이 남은 것은 파스타의 깊은 풍미만이 아니었다.
낯선 도시의 소박한 식당에서 나눈 짧은 대화,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은 다정한 온기였다.
상호명: Ristorante Bonaroti
주소: 428 Maple Ave E, Vienna, VA 22180
전화: 703-281-7550 / 주차: 넓은 주차장
대표 메뉴: Linguine Alla Vongole, Spaghetti allo Scoglio Portovenere, Linguine ai Frutti di Mare
■ 곽노은: 세계를 여행하며 길 위의 풍경과 식탁 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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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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