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빕니다(Peace be with you).”
가톨릭 미사에서 성체를 모시기 전 신자들이 주고받는 이 짧은 인사는 단순한 의례적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서로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질서이며, 무너진 관계를 다시 세우려는 가장 오래된 문명적 언어다. 부활한 예수가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처음 건넨 말 역시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단순한 마음의 안정을 넘어 정의와 공존 위에 세워지는 ‘샬롬’의 세계를 뜻한다.
그러나 종교는 현실 정치 속에서 종종 전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돼 왔다. 11~13세기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지를 되찾는다”는 명분 아래 200년 가까이 이어졌고, 신교와 구교의 대립에서 비롯된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과 17세기 30년 전쟁 역시 신앙의 차이가 권력과 결합하면서 유럽 전체를 피로 물들였다.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어진 레콘키스타(이베리아반도에서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국토를 회복하려 했던 운동) 또한 종교와 영토 회복 논리가 뒤엉킨 역사였다.
결국 종교전쟁의 본질은 신앙 자체보다 신앙을 이용한 권력의 문제에 가까웠다. 신의 이름은 인간의 욕망을 포장하는 가장 강력한 언어였고, 통치자들은 이를 통해 대중을 동원했다. 평화를 말하는 종교가 역설적으로 전쟁의 깃발이 되었던 이유다.
오늘날 국제질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2026년 현재 세계는 미국과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 지역 분쟁,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이 중첩되며 냉전 이후 가장 불안정한 균열 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이란의 대립은 단순한 지정학적 충돌을 넘어 종교적 정체성과 이념이 얽혀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이란은 시아파 신정체제를 기반으로 ‘저항의 축’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정치적 사명을 종교적 언어로 설명한다. 반면 미국 내부의 강경 보수 기독교 세력 역시 중동 문제를 ‘선과 악의 대결’ 혹은 ‘정당한 전쟁’의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양측 모두 신의 이름을 동원해 상대를 타협 불가능한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외교와 협상의 공간은 급격히 줄어든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 출신의 레오 14세 교황이 “하느님은 어떤 전쟁도 축복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발언이라기보다, 종교를 정치와 군사 행동의 정당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현대 세계 전체를 향한 경고에 가깝다.
문제는 오늘날 국제질서가 평화를 유지하는 방식 자체에 있다. 세계는 ‘억지력(deterrence)’이라는 이름 아래 균형을 유지해 왔다. 핵무기와 군사동맹, 경제제재는 전쟁을 막기 위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전쟁 가능성을 상시 구조화하는 체제이기도 하다. 평화는 존재하지만, 그것은 불신 위에 세워진 불안한 평화다.
상징적으로 올해 초 미국 핵과학자회가 발표한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는 자정 85초 전을 가리키고 있다. 1947년 시계가 만들어진 이후 가장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조정됐던 90초보다도 5초 더 앞당겨졌다. 이는 인류가 핵전쟁과 기후위기,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얼마나 위험한 균형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세계는 점점 더 협력보다 적대와 갈등의 언어에 의존하고 있다.
한반도 역시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군사적 억지력과 외교적 관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된다.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가장 확실한 안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전쟁 자체가 필요 없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더 현실적이라는 인식이다.
그래서 오늘날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는 단순한 종교적 축복을 넘어선다. 그것은 국제사회 전체에 던지는 질문이다. 세계는 힘의 균형 위에 설 것인가, 아니면 공존의 질서 위에 설 것인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오래전 ‘평화의 기도’에서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심게 하소서.”
‘지구 종말 시계’가 인류 멸망을 상징하는 자정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지금, 인류가 가장 절실히 되새겨야 할 기도 역시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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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부국장대우ㆍ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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