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7월 4일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엄밀히 말해 이날은 독립을 완성한 날이 아니라, 독립을 결심한 날이다. 이후 7년에 걸친 독립전쟁과 1783년 파리조약을 거쳐 비로소 국제사회에서 주권 국가로 인정받았고,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오늘의 미국이 출범했다. 우리에게 3·1절이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날이듯, 미국의 독립기념일 역시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위대한 출발점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건국 250주년을 맞은 올해,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축제를 준비했다. 수도 워싱턴 DC의 밤하늘에는 기네스북 기록을 경신한 86만 발의 불꽃이 쏘아 올려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은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축제를 덮친 폭염과 뇌우, 그리고 미국 사회를 짓누른 정치적 먹구름일지도 모른다.
화씨 100도를 웃도는 폭염으로 퍼레이드가 취소되고 온열질환자가 속출했으며, 밤에는 강풍을 동반한 뇌우로 행사 일정이 수차례 지연됐다. 자정을 넘겨 가까스로 재개된 불꽃놀이는 마치 현재 미국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독립 250주년은 국민 통합의 축제가 아닌, 진영 대결의 각축장으로 변질됐다. 초당적으로 준비해 온 기념사업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중심의 행사로 재편됐고, 이에 반발한 일부 민주당 주정부들은 연방 행사에 불참하며 자체 기념식을 열었다. 공연을 맡았던 예술인들마저 정치적 편향성을 이유로 잇따라 보이콧을 선언했다.
여기에 미국 시민의식의 퇴조라는 뼈아픈 현실도 드러났다.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와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턴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절반 가량은 건국 250주년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독립 대상국이 영국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미국 헌법의 핵심인 삼권분립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응답자도 절반에 달했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역사적 지식의 부재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응답자의 60%는 미국이 건국 정신에서 벗어났다고 진단했고, 절반 이상은 50년 안에 미국이 더 이상 자유로운 나라가 아닐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분열 속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독립기념일 연설은 통합 대신 대결을 부추겼다. 그는 민주사회주의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하며 “미국은 공산주의자를 원치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공산주의를 ‘잘라내야 할 암’에 비유하는가 하면, 선거제도와 우편투표의 공정성을 공격하는 등 정치적 메시지를 쏟아냈다.
국가 탄생 250주년을 기리는 자리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는 대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척결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건국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사라기보다 선거 유세에 가까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행사장에는 성조기만큼이나 ‘마가(MAGA)’ 모자가 물결쳤고, 백인우월주의 단체들까지 거리 행진에 나서며 “미국을 되찾자”고 외쳤다.
독립기념일은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그런 날조차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반대파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며 국가적 위협으로 몰아세우는 모습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장면을 연상시킨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좌파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던 사건이다. 두 사례는 국가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정치적 라이벌을 ‘국가의 적’으로 돌렸다는 점에서 기이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250년 전 미국 건국 선조들이 세운 정신은 자유와 권력의 견제, 그리고 국민의 동의에 기반한 정부였다. 독립선언문은 총칼보다 먼저 ‘펜’으로 쓰였다. 민주주의는 상대를 절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제도라는 틀 안에서 건강하게 경쟁하도록 만드는 장치다.
86만 발의 불꽃은 워싱턴의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러나 미국이 앞으로도 민주주의의 등대로 빛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불꽃놀이가 아니다. 서로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 높은 시민의식과 관용의 회복이다. 250번째 생일을 맞은 미국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진정한 질문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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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부국장대우ㆍ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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