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미국으로 이민 왔을 때 필자에게 가장 낯설었던 풍경 가운데 하나는 ‘부와 명성’(Lifestyles of the Rich and Famous)이라는 TV 프로그램이었다. 성공한 기업인과 유명인들의 저택과 요트, 전용기와 호화로운 생활을 거리낌 없이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미국 사회가 그들의 부를 무조건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부를 성공의 결과로 인정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었고, 막스 베버(Max Weber)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를 탐욕의 산물이 아니라 윤리의 산물로 보았다. 프로테스탄트, 특히 청교도들은 노동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Calling)으로 이해했다. 근면과 절제, 정직과 신뢰는 신앙의 실천이었고, 얻은 부는 사치의 수단이 아니라 다시 투자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책임의 결과였다.
부는 목적이 아니라 성실한 삶이 남긴 열매였다. 그리고 그러한 부의 축적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으로 믿었다.
이 점에서 베버는 칼 마르크스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로 규정했고 계급투쟁을 역사의 원동력으로 보았다. 그의 분석은 산업혁명기의 일부 모순을 설명하는 데 의미가 있었지만, 자유시장과 기업가 정신이 어떻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번영을 이루었는지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20세기는 두 사상이 현실에서 시험받은 시대였다. 소련과 동유럽, 북한 등 마르크스주의를 국가 운영의 원리로 삼은 나라들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활력을 동시에 잃었다.
반대로 자유시장경제를 선택한 국가들은 혁신과 기술 발전을 통해 전례 없는 부를 창출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불평등과 독점, 금융 투기와 같은 부작용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의 존재 때문이라기보다 자본주의 정신이 약화된 결과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빈익빈 부익부를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이는 현상과 본질을 혼동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본주의는 탐욕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탐욕을 절제하는 윤리를 요구한다. 정직한 노동,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 창업과 혁신, 재산권의 보호, 공정한 경쟁과 법치주의가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미국의 번영도 이러한 정신 위에서 가능했다. 미국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이 창조주로부터 생명과 자유, 행복추구권이라는 천부적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선언한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주의는 이러한 건국정신 위에서 발전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서로를 지탱하며 세계 최대의 경제를 일구었다. 미국의 힘은 풍부한 자원보다 자유로운 제도와 책임 있는 시민정신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부와 명성’과 같은 TV프로그램도 인기가 있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는 다시 비판받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시장보다 정부가 더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기업은 정치의 눈치를 보게 되고, 투자는 경제적 판단보다 정치적 계산에 좌우될 위험이 커진다. 자유시장경제는 권력이 경제를 움직일 때가 아니라 시장이 자유롭게 움직일 때 가장 큰 창의성을 발휘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정부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아파트를 짓든 공장을 짓든, 기업의 투자 판단을 정치가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이 어디에 아파트를 지을지, 공장을 지을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법치와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고 규제를 합리화하며 기업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시장은 정치가 아니라 소비자와 기술, 경쟁이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이며 미국 번영의 토대였다.
오늘 대한민국이 직면한 경제적 양극화 역시 단순히 돈을 뿌리고 분배를 확대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속 가능한 복지는 지속 가능한 성장 위에서만 가능하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고, 창업이 장려되며, 실패한 사람이 다시 도전할 수 있고, 기업은 특권이 아니라 경쟁으로 성공하며, 국가는 법과 제도를 공정하게 운영하는 사회. 그것이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 정신이 살아 있는 사회이다.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정신을 되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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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완/코리안리서치센터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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