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지하철에서 종이 그림책을 손으로 좌우로 밀면서 화면이 안 바뀐다고 우는 어린이를 본 적이 있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훨씬 더 동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제공함에 따라 예전의 그림책은 어린이의 호기심을 더 이상 충족시키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이런 디지털 전환 시대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변혁 수준으로 다가온 인공지능(AI)은 우리에게 더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일상생활에 AI가 빠르게 스며들면서 부모와 교육자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숙제를 모두 AI에 맡긴다면, AI와 대화하고 사람과는 소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지는 것 역시 우려되는 문제다.
그런데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과학기술 잡지 MIT테크놀로지리뷰가 10~18세 청소년들이 AI에 대해 가진 생각을 조사한 결과는 흥미롭다. 어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복합적으로 AI를 바라보고 있었다. 응답자의 57%가 챗봇을 정보 검색에, 54%는 학업에, 47%가 재미와 오락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적 조언을 구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AI가 자신의 생각과 창의성을 대신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였다. 한 학생은 AI를 이용해 자신이 쓴 글의 문법을 교정하고 직접 만든 게임 코드의 오류를 찾고 수정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AI가 만들게 하지 않고 자신의 창의성은 자신의 것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AI는 기술적 도움을 주는 도구이지 자신의 창작을 대신하는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챗GPT·클로드·제미나이 등 생성형 AI들의 성능이 갈수록 강력해지면서 교육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학업이나 연구에서 AI를 얼마나 허용할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지금은 AI를 어떻게 잘 사용하도록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AI가 교육에 가져올 가능성은 엄청나다. 강의 동영상이나 교과서, 참고 자료를 입력하면 시험문제와 연습 문제를 만들어주고 학생이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교사처럼 설명해주는 시스템 개발도 가능하다. AI를 잘 활용하면 경제력, 거주 지역 같은 조건이 뒷받침돼야 이용할 수 있었던 고가의 개인 과외, 최상급 입시 학원 등의 교육 기회를 모든 학생에게 균등하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많은 교육자가 공감하듯이 AI 시대의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지식을 얼마나 많이 기억하는가가 아니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 AI가 내놓은 답을 검증 및 비판하는 능력, 여러 답 가운데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그 판단에 책임지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AI에 넘겨주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 AI에 질문하고 곧바로 답을 받아 적는 학생과 먼저 문제를 직접 생각한 다음 AI와 토론하고, 다시 질문하며, 다른 AI 자료와 비교하고, 마지막 결론은 스스로 내리는 학생 사이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엄청난 차이가 생길 것이다.
전자는 AI에 의존하는 사람이 되고 후자는 AI를 능력 증폭기로 활용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에 도달한 사고의 과정을 더욱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 AI를 사용하고 어떤 질문을 했는지, 어떤 답을 왜 취하고 버렸는지, 무엇이 잘못됐음을 발견했는지,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와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의 전 과정을 평가하게 될 것이다.
결국 AI 시대의 교육 목표를 AI에 능숙한 학생을 키우는 데 둬서는 안 될 것이다. AI가 있어도 스스로 생각하고 AI의 답을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AI보다 더 좋은 질문을 던지고 AI가 더 좋은 답을 내놓을 수 있도록 상호작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인간의 몫으로 남겨야 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야 한다.
AI를 가장 강력한 도구로 활용하되 생각과 판단의 주인은 끝까지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AI 변혁의 시대를 맞아 현재의 영유아 및 초중고교 교육 시스템, 그리고 입시 제도는 어떻게 변화돼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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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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