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동창이 모였다. 양로 호텔에 계신 선배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9월에 들어서도 가시지 않는 더위에 우리는 벌게진 얼굴로 문을 열었다. 점심이라 하기엔 너무 늦었고 저녁 식사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한 오후 네 시. 선배님은 식탁에 혼자 앉아 퉁퉁 불은 잡채와 멀건 양송이수프를 먹고 계셨다. 벽시계의 움직임과는 무관한 표정과 느릿한 숟가락질에서 그분을 스쳐간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핸드폰에서 찾은 성경 구절을 읽어드리니, 눈을 감고 듣다가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셨다. 우리도 따라 불렀다. 젊은 시절의 선배님 모습이 노랫가락을 타고 흔들렸다.
동창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길었다. 긴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소파에 푹 파묻힌 모습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넓은 집을 떠나 낯선 집 귀퉁이 방에서 보내는 질긴 하루. 생에서 얼마 남지 않은 이 아쉬운 시간에 아무 감정도 얹을 줄 모르는 천진한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한때 그토록 총명했던 사람이 이제는 시간도, 이름도, 방금 먹은 음식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짓눌렀다.
우리는 늙음을 무언가를 잃어가는 시간, 떠나보내는 시간, 쇠락을 실감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선배님의 눈빛에서 상실만을 읽었다. 인생이란 결국 한바탕 긴 이야기를 살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여행에 불과한 것일까. 마음이 우울해지려는 순간, 문득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생각났다. 그는 인간 정신은 세 가지 변신을 거친다고 했다. 정신은 먼저 낙타가 된다. 낙타는 “너는 해야 한다”라는 무거운 명령을 등에 지고 사막을 건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낙타는 사자가 된다. 사자는 자신을 억누르는 규범과 굴레에 맞서 “나는 원한다”라고 외친다. 정해준 길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기 위해 싸운다. 마지막 변신은 뜻밖에도 힘센 사자가 어린아이로 변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과거의 짐도 승리의 훈장도 자랑하지 않는다. 잘 잊고 잘 놀며 매 순간 새롭게 시작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해야 한다’도 없고, 세상을 향해 외치던 ‘나는 원한다’도 넘어선 자리에서 삶을 향해 ‘그래!’라며 긍정을 보낸다.
선배님의 삶에도 낙타의 시간이 있었을 거다. 생업을 등에 지고 묵묵히 걸었고, 사자의 시간 속에서 세상과 맞섰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보낸 이제 찬송가의 선율에 마음을 맡기는 어린아이에 이르렀다. 다만 슬픈 것은 니체의 아이는 스스로 짐을 내려놓는 능동적 삶이지만, 선배님이 도달한 아이는 망각이 강제로 씌워놓은 결과라는 점이다.
나는 노년을 젊음이 빠져나간 빈자리라고만 생각했다. 잘 걷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며, 점점 세상에서 멀어지는 시간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달라졌다. 어쩌면 노년은 상실만으로 채워진 공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공책이다. 그 마지막 페이지에는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문장도 타인의 박수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수프를 한 숟갈 뜨고, 익숙한 노래를 부르며 오늘을 기록하면 된다.
나는 선배님을 생각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이 아름다운 시간일 수도 있다는 위로를 얻는다. 억지로 끌어안았던 짐을 내려놓은 자리. 그 비워진 페이지 위에 우리는 시계 바늘의 구속을 받지 않는 순수한 문장을 적어가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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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희 수필평론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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