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퇴근을 준비하는데 엔젤 씨가 들기 힘들 만큼 커다란 붉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 월요일 노동절을 맞아 열심히 일하는 시민참여센터 직원들에게 주고 싶어 가져왔다고 했다.
그리스 출신인 엔젤 씨는 남편이 시민참여센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어 평소에도 행사에 자주 참석한다. 하지만 노동절에 장미꽃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뜻밖의 꽃다발을 바라보며 문득 노동절의 의미와 오늘 미국 노동의 현실을 생각하게 됐다.
미국 노동절은 1882년 뉴욕 노동자들의 행진에서 시작해 1894년 연방 공휴일이 됐다. 그 과정에는 당시 노동운동과 정부의 긴장이라는 복잡한 역사가 놓여 있다. 특히 1886년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과 8시간 노동제 요구는 노동자 권리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1894년 풀먼 파업 당시 연방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노동자들이 희생된 것도 당시 미국 사회가 노동문제를 얼마나 첨예하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미국의 노동절은 처음부터 순수한 ‘노동자의 승리 기념일’만은 아니었다. 노동을 인정하면서도 급진적인 노동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두려 했던 정치적 타협의 성격도 있었다.
그러나 노동절의 본래 의미는 분명하다. 하루 8시간 노동, 주말과 휴식, 아동노동 제한, 산업안전 등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하는 권리는 시장이 저절로 선물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조직하고 요구하고 싸워 얻어낸 결과다.
그런데 2026년 미국의 노동현실은 또 다른 도전을 맞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스탠퍼드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 22~25세 초기 경력 노동자의 고용이 크게 줄고 있다. 특히 해고보다 신규 채용 감소가 두드러진다.
이는 단순히 젊은이들의 일자리 몇 개가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다. 신입으로 들어가 경험을 쌓고 숙련 노동자로 성장하는 ‘노동의 사다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기업들이 AI를 감원 명분으로 사용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2026년 3월에는 AI가 기업이 제시한 감원 사유 가운데 가장 많이 언급됐다. 물론 모든 감원을 AI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실제 기술 도입의 효과와 별개로 ‘AI’를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사용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새로운 불안을 안겨준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노동의 내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근육을 기계로 대체했다면, AI는 문서 작성, 분석, 번역, 코딩 등 인간의 판단과 언어능력에 의존하던 업무까지 바꾸고 있다. 특히 금융·법률·IT·회계 등 전문직에 진출한 젊은 한인 2세들에게도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AI가 생산성을 높여 만들어낸 이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 재교육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AI를 활용한 채용과 해고를 누가 감시할 것인가. 신입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젊은 노동자들이 경험을 쌓을 기회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기술기업이나 시장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기술이 노동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내버려둘 것이 아니라, 정치와 법, 노동자 조직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한인사회도 준비해야 한다. 1세대 자영업자를 위한 법률 지원과 교육, 2세대와 젊은 전문직을 위한 AI 재교육과 직업전환 프로그램등 세대를 연결하는 커뮤니티 차원의 법률과 교육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지난 금요일 받은 붉은 장미는 단순한 감사의 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1882년 뉴욕의 노동자들이 던졌던 질문을 2026년의 우리에게 다시 건네는 꽃이었다. 노동절의 역사가 보여주듯 권리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조직하고, 요구하고, 함께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새로운 권리가 만들어진다.
AI 시대의 노동절도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AI를 막을 것인가가 아니다. AI가 만들어내는 부와 생산성의 혜택을 누가 가져가고, 그 과정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을 누가 보호할 것인가이다.
그 질문을 시작하는 것이 2026년 노동절을 맞는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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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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