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걷다가 두 팔로 안아도 다 안기지 않는 아름드리 나무 앞에 서 본다. 몇 톤은 족히 넘을 저 육중한 몸통.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 본다.
“저 나무는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잠시 당황한다. 평생 나무를 보고 살았으면서도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개는 이렇게 답한다.
“뿌리를 땅에 박고 있으니 땅에서 온 것 아니겠소?”
그럴듯한 대답이다. 그런데 조금만 더 따져 보면 이상해진다. 땅에서 왔다면 나무의 무게만큼 그 자리의 땅이 움푹 꺼져 있거나 낮아져 있어야 한다. 수백 년 된 나무 밑에는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숲을 본 적이 없다. 자연과학을 배운 나 역시 이 물음 앞에서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무를 이룬 재료의 대부분은 놀랍게도 공기에서 왔다. 잎은 광합성을 통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CO₂)를 받아들여 탄소(C)만 붙잡아 두고, 산소(O₂)는 고스란히 공기 중으로 돌려보낸다. 나무가 ‘산소 공장’, ‘이산화탄소를 먹는 공기 정화기’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붙잡아 둔 탄소는 뿌리에서 올라온 물과 결합해 고분자 탄수화물, 곧 나무의 섬유질이 된다. 우리가 손으로 두드리는 그 단단한 몸통은 결국 햇빛과 공기와 물이 만나 굳어진 결정체다. 땅에서 얻은 것은 극히 적은 양의 무기질뿐이다.
불이 붙으면, 정확히 되돌려준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나무가 불에 탈 때 일어나는 일은 광합성의 정확한 역반응이다. 나무에 저장된 탄소가 공기 중의 산소를 다시 끌어당겨 이산화탄소로 변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 그 우람하던 아름드리나무가 결국 한 줌의 재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다. 빌려 온 것을 남김없이 돌려주고 떠나는 셈이다.
여기서 나는 오랫동안 품어 온 또 하나의 물음으로 넘어간다. 세계의 큰 부자들은 왜 그토록 기부하기를 좋아하는가. 카네기, 록펠러, 워런 버핏, 빌 게이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부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엄청난 액수를 사회에 내놓으며 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퍼 주는데도 그들의 재산은 줄기는커녕 더욱 불어난다.
우리 역사에도 그 답에 가까운 집안이 있다. 조선시대 12대, 300년 넘게 부를 이어 온 경주 최부자 집이다. 보통 ‘부자 삼대 못 간다’는데 어떻게 300년, 400년을 이어 왔을까. 그 집안의 육훈(六訓)에 답이 들어 있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말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지니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
최부자 집은 그렇게 끊임없이 내보내며 살았고, 그 베풂이 곧 300년을 버티게 한 뿌리가 되었다. 재산을 움켜쥐어서가 아니라 풀어놓았기에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무는 공기에서 받은 것을 재로 남기고 떠난다. 그러나 그 되돌려주는 과정 자체가 곧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난 이유이기도 하다. 산소를 아끼지 않고 내보냈기에 그 나무는 그토록 커질 수 있었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고 나는 믿는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가진 것을 나누고, 몸을 움직여 봉사하며 사는 일은 언뜻 내 것이 줄어드는 손해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이치가 옳다면, 그것은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돌고 돌아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일이다. 받은 만큼 정확히 되돌려주는 것 나무가 수백 년 동안 말없이 실천해 온 그 이치를, 이제는 우리가 배울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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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열/조선족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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