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오면 아침저녁의 바람부터 달라진다. 그토록 뜨거웠던 여름이 한발 물러서고, 나뭇잎도 조금씩 빛깔을 바꿀 준비를 한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9월은 학교가 새 학기를 시작하는 달이다. 학생들은 새 교실에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새로운 책을 펼친다. 그러나 배움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만의 것이 아니다. 인간은 나이와 관계없이 배우며 성장하는 존재다. 학교에는 졸업이 있지만 인생의 배움에는 졸업이 없다.
나 역시 일흔을 넘긴 나이에 다시 교실을 찾았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이제는 미국의 성인교육 교실에서 배우는 학생이 되었다. 가르치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다시 배우는 자리에 앉으니 처음에는 낯설기도 했다.
그러나 공부를 계속하면서 한 가지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다. 배움은 부족함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배움은 굳어진 생각을 깨우고, 지친 마음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내일을 향해 다시 일어서게 한다.
9월에는 노동절도 있다. 노동절은 단순히 하루를 쉬는 공휴일이 아니다. 우리가 누리는 생활과 사회의 발전이 수많은 사람의 땀과 수고 위에 세워졌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노동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넘어 자신과 가족, 그리고 공동체를 세워 가는 존엄한 행위다.
미국에 정착한 한인 디아스포라 역사는 노동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언어와 문화가 낯선 땅에서 많은 한인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거친 일들을 마다치 않았던 삶의 현장은 서로 달랐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공통된 소망이 있었다.
가족에게 더 나은 삶을 물려주고, 자녀들에게 더 넓은 교육의 기회를 열어 주겠다는 희망이었다. 부모 세대의 정직한 노동은 자녀 세대의 꿈을 키운 밑거름이 되었고, 오늘날 한인 사회가 미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게 한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이름 없이 수고한 이민 선배들의 인내와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하지만 노동의 가치는 직업의 종류나 수입의 크기로 결정되지 않는다. 노동에는 귀천이 없다.
노동하는 사람은 존중받아야 하며, 고령자와 이민자, 장애인과 저소득 근로자도 안전하고 공정한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 배움과 노동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다. 배움은 더 나은 노동의 길을 열어 주고, 노동은 배운 것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게 한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기 어렵다. 특히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이 일상의 모습을 바꾸는 오늘날에는 젊은이뿐 아니라 중장년과 노년 세대도 계속 배워야 한다.
가을은 나무가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그러나 인생의 열매는 저절로 맺히지 않는다. 배움의 씨앗을 뿌리고 노동의 땀으로 가꾸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때 비로소 희망이라는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새 학기를 맞아 교실로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은퇴 후에도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는 어르신들에게도 힘찬 응원을 보낸다.
9월의 문턱에서 우리 모두 다시 책을 펼치고 삶의 소매를 걷어붙이자. 지나간 실패 때문에 주저앉지 말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지 말자. 다시 배우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리고, 성실하게 노동하는 사람에게는 삶의 의미와 보람이 남는다.
가을은 끝을 알리는 계절이 아니라 더 깊고 풍성한 삶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다시 배우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에게 인생의 9월은 언제나 희망의 새 학기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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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화/전성결대학장·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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