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부모님 품을 떠나 세상 밖을 향해 대학으로 가는 시기다. 잠시 돌이켜보니 나역시 아이들을 보내야했던 시간이 있었다.
기숙사와 아파트를 오가며 짐을 옮기던 순간들, 처음 캠퍼스를 밟던 입학식의 설렘, 방학이면 다시 짐을 싸고 풀며 땀을 흘렸던 기억들. 지금은 뉴저지도 가지 못하는 내가 그때는 무슨 용기로 보스턴을 들락날락하며 다녔는지, 그때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던 엄마였다.
그 시절 보스턴의 거리와 역사,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여유는 없었고 오직 아이들을 위한 길만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날 문득 보스턴을 가고싶다고 막내 아이에게 말했더니 마침 휴가를 받았다고 무작정 차를 타고 따라 나섰다.
그렇게 세 아이를 졸업시킨 후 다시 보스턴을 찾은 건 10년 만의 일이다.
자유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오래된 골목길, 캠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 대학의 상징 같은 붉은 벽돌 건물들, 찰스강을 따라 부는 시원한 바람,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품고 있는 젊음의 열기.
하얗게 쌓인 눈밭에서 제니퍼와 올리버가 장난치던 하버드 교정이 생각나고, 프란시스 레이가 만든 Love Story 배경음악이 귓전에서 들리는 듯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영화 속 장면과 실제 하버드의 풍경이 겹쳐지는 순간, 마치 오래된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느낌이었다.
하버드의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 사이를 걷다 보니문득 이곳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던 T. S. 엘리엇이 떠올랐다. 그는 ‘황무지’를 통해 전쟁 이후 불안했던 인간의 내면을 노래했고 이 캠퍼스에도 많은 젊은 영혼들의 고민과 꿈이 있을 것이다.
건축물 역시 공대 같은 느낌인 MIT,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으로 가득한 버클리 음대 등 그동안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공부했던 캠퍼스를 다시 걸으니, 벅차게 살아온 세월의 한 장면 한 장면이 떠올랐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쉼 없이 일했던 시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던 날들, 졸업식에서 느꼈던 벅찬 감동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그리고 보스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레드삭스였다.
오래된 펜웨이 파크의 ‘레드 삭스’가 새겨진 옷을 입은 인파 속에서 그들의 열정을 느꼈다. 야구가 한 도시의 역사와 사람들을 이어주는 문화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의 오래된 아름다움과 현재의 활기를 함께 느꼈던 보스턴 커먼, 그 공원에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을 공연한다. 특히 한 시간 반 동안 시내 곳곳을 돌아보는 관광 버스는 육로뿐 아니라 찰스강 물결이 흐르는 안으로 이어졌는데 어느 나라 여행지를 다녀도 없었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의사로 일하다 은퇴한 안내자는 보스턴의 대학, 도시의 숨은 역사적인 지식과 유머를 더한 그의 설명은 관광 안내를 넘어 한 도시를 사랑하고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세 아이들을 키워내려고 앞만 보며 달렸던 젊은 엄마의 인생을 반추하며 이제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돌아와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보스턴 여행은 한 도시를 다시 만나는 여행이면서, 동시에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시간 여행’이었다.
아이는 “ 엄마 고마워요 “한마디 후 조용히 손을 잡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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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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