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림트의 작품 ‘키스’가 소장돼 있는 벨베데레 궁전.
비엔나에 도착하면 도시의 규모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래된 건물들이다. 슈테판 대성당의 첨탑이 구시가지의 중심에 서 있고, 그 주변으로 좁은 골목과 광장이 이어진다. 조금만 걸으면 합스부르크 왕가가 사용했던 호프부르크 왕궁이 나오고, 다시 몇 블록을 지나면 빈 국립 오페라극장과 빈 미술사 박물관, 무지크페어아인이 차례로 나타난다.
비엔나는 오래된 도시이지만 과거가 박물관 안에만 남아 있는 도시는 아니다. 왕궁은 지금도 국가기관과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오페라극장에서는 매일 공연이 열리며, 수백 년 된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신다. 합스부르크가 남긴 건축물과 음악가들의 흔적, 19세기 말의 도시계획, 20세기 미술과 현대 건축이 서로 다른 시대의 층을 이루고 있다.
쇤브룬은 원래 합스부르크가의 사냥터와 별장으로 사용되던 곳이었다. 17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침공으로 기존 건물이 피해를 입은 뒤 대규모 궁전으로 재건되기 시작했고,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크게 확장됐다.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됐다.
궁전은 노란색 외벽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황실의 생활공간과 의전 공간이 이어진다.
쇤브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모차르트다. 1762년 여섯 살의 모차르트가 황실 가족 앞에서 연주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비엔나의 합스부르크 역사는 호프부르크 왕궁에서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호프부르크는 약 600년에 걸쳐 합스부르크 왕가가 거주하고 통치했던 궁전이다. 지금도 오스트리아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 공간이 있고, 시시 박물관과 황제 아파트먼트, 왕실 보물관 등 여러 박물관이 자리한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1848년 황제가 되어 1916년까지 통치했다. 68년에 걸친 긴 재위기간 동안 비엔나는 크게 변했다. 옛 성벽을 철거하고 링슈트라세를 조성하면서 새로운 관공서와 박물관, 극장들이 들어섰다. 지금의 비엔나를 대표하는 도시 경관 상당수가 이 시기에 형성됐다.
벨베데르는 사보이 공작 에우제니오가 세운 궁전이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활약한 군인이었던 그는 동시에 미술품과 책을 수집한 예술 후원가였다.
오늘날 벨베데르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작품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다. 하지만 궁전 자체도 중요한 볼거리다. 상궁의 대리석 홀에서는 1955년 오스트리아 국가조약이 체결됐다. 이 조약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합국의 점령 아래 있던 오스트리아는 주권을 회복했다.
한때 황제의 궁전이었던 건물이 이제는 미술관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비엔나의 역사를 보여준다. 합스부르크가 수집했던 예술품과 오스트리아 근현대 미술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미술을 좋아한다면 벨베데르에서 끝낼 이유가 없다. 빈 미술사 박물관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백 년 동안 수집한 미술품이 모여 있다.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페르메이르의 ‘회화의 기술’, 라파엘로와 카라바조의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뮤지엄 구역에서는 레오폴트 미술관과 무목을 만난다. 레오폴트 미술관은 에곤 실레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실레와 클림트가 활동했던 20세기 초 비엔나는 예술과 건축, 음악이 동시에 변화하던 시기였다. 무목에서는 팝아트와 플럭서스,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전혀 다른 시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구시가지 한가운데에 솟은 슈테판 대성당은 비엔나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남탑의 계단을 올라가면 구시가지의 지붕들이 내려다보이고, 북탑에서는 비교적 편하게 전망을 볼 수 있다. 성당 지붕에는 약 23만 개의 타일이 사용됐으며 독특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든다.
모차르트는 이곳에서 결혼했고, 장례식도 이곳에서 치러졌다. 음악가의 삶이 성당과 도시의 역사 속에 겹쳐 있다.
비엔나를 음악의 도시라고 부르는 이유는 특정 음악가 한 사람 때문이 아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 등 서로 다른 세대의 작곡가들이 이 도시에서 활동했고, 그 음악을 연주할 공연장과 오케스트라가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살았던 집 가운데 현재 남아 있는 대표적인 장소가 모차르트하우스다. 그는 1784년부터 1787년까지 이곳에서 생활했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했다. 집을 둘러보면 천재 음악가의 생활을 신화처럼 상상하기보다 당시 비엔나의 주거환경과 사회적 위치를 함께 볼 수 있다.
베토벤의 흔적은 더 넓게 남아 있다. 그는 비엔나에서 여러 차례 거처를 옮겼고, 현재도 여러 기념관이 남아 있다. 특히 하이리겐슈타트는 그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장소다. 청력을 잃어가던 베토벤은 이곳에서 동생들에게 남긴 이른바 ‘하이리겐슈타트 유서’를 작성했다. 음악가에게 청력 상실은 직업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었지만, 그는 이후에도 작곡을 계속했다.
슈베르트의 생가는 비엔나 서민 주거환경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1797년 이곳에서 태어난 슈베르트는 짧은 생애 동안 수많은 가곡과 교향곡, 실내악 작품을 남겼다. 친구들이 모여 음악을 연주했던 슈베르티아데의 문화도 비엔나의 음악적 생활상을 보여준다.
카페 문화도 비엔나 여행에서 빼놓기 어렵다. 자허에서는 자허토르테를 먹을 수 있고, 데멜에서는 카이저슈마른이나 다양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카페 센트랄은 오랜 기간 작가와 지식인들이 드나들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조금 덜 붐비는 전통 카페를 찾는다면 프라우엔후버나 카페 슈페를 같은 곳도 선택할 수 있다.
카페에 앉아 멜랑지나 아인슈페너를 주문하면 비엔나식 커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비엔나의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빨리 마시고 나오는 공간과 다르다. 오래 머물면서 신문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이곳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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