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더운 계절이라지만 너무 덥다. 지구촌 곳곳이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알프스 지역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려 거대한 폭포를 이루고, 지구촌 곳곳에 온열 환자들이 속출하고, 여기저기 산불이 나고, 야외 활동 자제 경보가 내리고, 야외 스포츠 활동이 취소되고 있다.
수십년간 마르지 않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유럽에서는 강이 말라 선박 운항이 중단되고 일부 원자력 발전소는 물 부족으로 가동이 중지 되었다고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어느 방송에서 한 기후전문가는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어쩌면 올 여름이 가장 덜 더운 여름이 될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대답을 하였다. 이대로 가면 앞으로 매년 올해보다 훨씬 더 더운 여름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찔하다. 그의 예측성 발언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 기후전문가의 예측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기후위기 단계를 지나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의 초입에 서 있다. 국제사회가 어물어물 적극적 대처를 외면한 사이, 기후재앙은 이미 시작되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늦었음에 대한 자책보다, 지금이라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야 한다.
얼핏보면 기후위기는 나와는 거리가 먼 강건너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후위기야말로 나와 가장 가까이 있으며 지구촌 촌민(村民)의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 폭염과 가뭄이 맹위를 떨치는 올여름의 등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점에서 우리는 일말(一抹)일지라도 부채의식을 갖는다. 기후재앙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문제의식에서, 자발적이고 진지한 실천과 행동이 나온다.
한 여름, 좀 더울지라도 냉방 온도를 1~2도 높이고,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의 플러그를 뽑자. 진부하고 미미해 보이지만, 미국 전체로 보면 전력 사용량을 눈에 띄게 줄이는 결과를 가져 온다. 육류 소비를 줄이고, 지역 농산물을 선택하는 일도 탄소배출을 크게 낮춘다. 물을 아끼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습관, 사소해 보여도 크게보면 이런 작은 것이 모이고모여 지구의 부담을 덜어준다.
가장 실질적이며 효과적인 대책은 개인을 넘어 기업, 주정부, 국가, 국제사회가 기후위기 극복에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최근 버지니아 주정부가 ‘7월부터 모든 식당에서 일회용품 스티로폼 전면 퇴출’을 결정하였다. 늦은감이 있지만 기후위기 시대 매우 훌륭한 결정이다. 앞으로 쓰레기 정책도 더 정밀하게하여, 쓰레기 발생량 감소와 쓰레기 재자원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아직도 기후위기를 음모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지금 기후위기의 원인이 인간의 산업활동에서 나온 온실가스 증가에 있음은 기후관련 학자들 대다수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대책과 성찰을 인간의 내면과 삶의 방식에서 찾아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작금의 기후위기는 그 동안 인간이 자연을 이용과 착취와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는,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을 ‘나와 그것’(I-It)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틀렸음을 말해준다.
기후위기는 인간이 자연만물을 ‘서로 이어져 있는 존재’로 인식하고,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할 ‘나와 너’(I-Thou)의 관계로 바라보도록 내면의 인식 전환을 요청한다.
성찰은 인간의 삶의 방식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까마득한 옛날, 아예 기후위기라는 말이 있기도 전, 동북아의 현인 노자(老子)는, 세상을 살아가는데‘아끼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다’(막약색 莫若啬)고 하였다. 사람을 대함에, 물건을 사용함에, 국력을 사용함에‘아낌’을 강조하였다.
아낌은 지나치게 박하고 구차한 인색이나 궁색이나 옹색을 뜻하지 않는다. 아낌은 사람이나 물건을 귀(貴)하고 중(重)하고 애틋하게 여겨, 함부로 사용하거나 헤프게 사용하거나 혹은 낭비하지 않고, 목적과 정도(程度)와 필요에 맞게 바르고 알맞게 쓰는 것을 의미한다.
‘아낌’은 기후위기 시대, 우리가 지녀야 할 인간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다.
지구촌의 올여름 폭염과 가뭄의 기후재앙, 그 극복,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구가 우리이며, 우리가 지구라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늦었지만 가능하다. 우리 모두가 겸손히 자연을 바라보는 마음을 바꾸고, 오늘 여기서 ‘아낌’을 우리의 삶의 방식으로 꾸준히 실천할 때, 우리의 지구는 우리를 넘어 우리의 손자녀 미래세대에게도 아름다운 ‘생명의 집’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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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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