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참전전우회 미주총연합회 및 뉴욕지회 김석환 고문
▶ 1965년 ROTC 3기 임관이후 월남전 등 30년간 군인의 길

[김석환 고문]
▶‘보국훈장 삼일장’ 등 각종 훈장·표창 수훈 다수
▶모교·후배사랑 남달라 ‘노송 글로벌 체험 프로그램’등 적극 후원
"김 대령!" 플러싱 거리에서 이 세 글자는 곧 신뢰와 의리의 대명사다. 80대의 고령임에도 다부진 체구와 쩌렁쩌렁한 목소리, 어딜 보아도 완벽한 군인의 표상이다. 하지만, 손자 이야기만 나오면 함박웃음을 짓는 천생 따뜻한 할아버지. 철저한 원칙주의와 뜨거운 동포애로 뉴욕 한인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는 김석환 월남참전전우회 미주총연합회(예비역 대령) 및 뉴욕지부 고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과 애국혼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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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소년, 격동의 세월을 품다
1942년, 전라남도 전주의 한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4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소년 김석환의 어린 시절은 격동의 현대사와 맞닿아 있었다.
해방의 환희를 어린 마음에 품기도 잠시, 뇌리에 깊이 박힌 것은 6.25 전쟁의 참화였다. 포성이 짓누르던 시골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자연스럽게 국가와 안보가 무엇인지, 나라가 흔들릴 때 개인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깊은지를 뼈저리게 체감하며 성장했다.
소년 시절 보고 들었던 8.15 광복의 감격과 6.25의 상흔은 훗날 그가 철저한 국가관과 투철한 안보관을 지닌 군인으로 바로 서는 가장 단단한 뿌리가 되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은 그는 명문 전주고등학교(제38회)를 거쳐 전북대학교에서 수의학을 전공하며 생명의 소중함과 리더십의 기초를 다졌다.

[사진2]
■임관부터 예편까지, 30년 군인의 길과 맹호부대의 기억
대학 졸업 후 그는 조국을 지키는 명예로운 길을 택했다. 1965년 대한민국 ROTC 3기로 임관한 그는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받아 ROTC 부회장 및 전국부회장을 2년간 역임하며 초급 장교 시절부터 남다른 발자취를 남겼다.
임관 이래 30년간 오직 국가와 군을 위해 청춘을 바친 그는 1968년부터 1969년까지 1년간 베트남(월남)전선에 자원하여 맹호부대 과학소대장으로 활약했다. 죽음이 교차하는 최전선에서 고엽제 보급 등 부대의 핵심 임무를 수행하며 부하들의 생명을 지키고 작전을 완수하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녔다.
비록 직접적인 안부를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당시 치열했던 정글 속에서 전우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흘린 땀방울은 그의 가슴속에 영원한 전우애로 깊이 새겨졌다.
이후에도 그는 육군 국방대학원을 거치며 군사 전문성을 높였다.
30년 동안 성실과 근면을 무기로 매사에 충실했던 결과는 눈부셨다.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을 거머쥐었으며, 대령으로서 가장 품격 높은 대한민국 정부 삼일장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3군사령부 근무 시절 대령으로서 최고의 근무 성적과 품격을 인정받아 미 훈장(Meritorious Service Medal)을 수훈했고, 미 8군 연락단장 시절 또 한 차례 같은 훈장을 받으며 한미 동맹의 가교 역할로서도 최고의 역량을 증명했다. 마침내 1995년 4월 30일, 육군대령으로 명예롭게 예편했다.
■학문의 뜨거운 열정과 도전: MBA와 카이스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서강대학교에서 마케팅 MBA 석사(1986)를 취득하며 시대 변화에 발맞춘 경영 마인드를 갖추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신인 카이스(CAKAIS)에서 1년간 펠로우십을 수료하며 안보를 넘어 국가 산업과 기술 발전에 대한 식견을 넓혀나갔다. 군인으로서의 꼿꼿한 기개에 현대적 경영 마인드와 학구열이 더해진 순간이었다.
■차세대를 향한 따뜻한 사랑과 든든한 할아버지
고교 졸업 후 60년이 훌쩍 넘었지만, 김 대령은 모교와 후배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지난해와 올해(7월 25일~8월 2일), 모교 후배들이 미국을 방문하는 ‘노송 글로벌 체험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인솔 교사와 재학생(올해 12명)들의 미국 투어 활동을 돕고 선배로서 아낌없는 조언과 격려를 건넸다.
가족 이야기에서는 꼿꼿한 예비역 대령의 카리스마가 온화한 미소로 바뀐다. 1968년 대영초등학교 교장이자 남부교육청 인사장학관이었던 부인 이우영 여사와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러나 6년 전 부인이 작고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현재 서울의 큰 아들(김재영)네와 뉴욕 그레넥에 거주하는 작은 아들(김재균) 집이 화목하게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특히 큰 아들 집의 큰 손자 김준영 군에 대한 사랑은 더없이 지극하다. 과거 뉴욕 프라미스 교회에서 개최한 초등학교 대상 스펠링 비(Spelling Bee) 대회에서 챔피언을 차지했던 경력을 퍽 자랑스러워한다.
■멈추지 않는 애국행보와 아름다운 노년
매일 꾸준한 건강관리 덕분에 80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차 보이는 그는 2년 전 뉴욕시가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함과 사기 증진을 위해 마련한 역사적인 행사를 생생히 기억한다.
뉴욕시에서 비행기와 버스를 전세 내어 200명의 참전용사(휠체어 의지 40명 포함)를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로 초청해 참배토록 했던 그날, 라과디아 공항 로비에서 미국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치하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는 미국 정부의 보훈 정신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성실하고 책임 있는 삶을 살자." 그것을 평생 삶의 신조로 살아온 김석환 대령. 한인타운 플러싱에서는 그의 본명은 낯설어도 '김 대령' 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과거 시골마을에서 맨몸으로 시작해 격동 전장을 누비고, 이국 땅에서 택시 회사를 경영하는 노병이 되었지만, 그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조국을 향한 충정과 전우들에 대한 사랑은 하루도 식은 적이 없다. 군복은 벗었어도 그의 삶 전체가 곧 대한민국 안보의 역사요, 살아있는 애국혼의 찬란한 서사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7월11일 마련된 84세 생일축하 모임에서 전우들과 함께 한 김석환 대령(가운데).
■ “한인사회 어른으로 후세대에 안보·조국애 전하는데 앞장” ■
▷커뮤니티 봉사와 리더십◁
2004년 4월 8일, 새로운 꿈을 품고 미국 땅을 밟은 그는 화려한 경력을 내려놓고 이민 생활의 최전선인 택시 운전으로 미국살이를 시작했다. 6개월간의 고된 운전대를 거쳐 현재는 'Han Kook Corp.'라는 택시 회사를 직접 운영하며 자수성가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생업의 고단함 속에서도 그는 커뮤니티를 향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
대한노인회 미 북동부 회장(2016년~현재): 한인사회 어르신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화합을 이끌며 따뜻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월남참전전우회 미주총연합회 고문: 뉴욕 500명, 미 전역 1,00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6.25 참전 기념행사, 월남전 관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전우애를 고양하고 후세대에 안보와 조국애의 의미를 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매주 전우들과 만나 밥을 나누고 회포를 풀며 화합을 다지는 그는, 지난 83세 생일에도 뉴욕베트남참전유공자전우회(회장 그레이스 민)를 비롯해 김수웅 예비역 중령, 백돈현 대한민국 월남참전자회 미주총연합회장, 배광수 재향군인회 미동북부지회장 등 각계각층의 리더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축하연을 가졌다.
이날 쏟아진 축하와 덕담은 그가 전우들 사이에서 얼마나 큰 신망을 받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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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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