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 연방대법원은 이미 위협적인 수준을 넘어선 대통령 권한을 더욱 확대했다. 이는 건국의 아버지들(헌법 제정자들)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의 수준이다. 스스로를 ‘원전주의자’라고 부르는 대법관들은 대통령의 민주적 ‘책임성’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진정한 원전주의자들인 헌법 제정자들은 이러한 판결에 얼굴을 찌푸렸을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이 대중의 여론에서 비롯되고 그것에 반응하는 존재라는 생각 자체를 꺼렸다. 건국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었던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이르러서야 대통령직은 민주주의의 화신이라는 상징적 외피를 두르게 되었다. 이러한 대통령 중심주의는 오래전에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지만, 대법원은 권력분립 원칙상 대통령 권한이 더욱 비대해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기능이 서로 구분된다는 역사적으로 부정확하고 신중하지 못한 정리를 내세우며 의회의 권한을 약화시켰다.
이번 6대3 판결은 대통령이 규제위원회 위원들을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이 아니라 ‘원할 때 언제든지’ 해임할 권한을 가진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정당한 사유란 직무 태만이나 위법 행위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규제위원회는 매우 많다. 연방의회가 최초의 독립 규제기관인 연방 주간통상위원회를 설립한 지 139년 동안 연방의회는 지금 대법원이 요구한 것과는 정반대로 대통령의 무제한적 지배를 막기 위해 이들 기관을 설계해 왔다.
다수 의견은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작성했으며,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새뮤얼 얼리토, 에이미 코니 배럿, 닐 고서치,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들이 동참했다. 반면 엘레나 케이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소니아 소토마이어 대법관의 반대 의견에 가세했다.
대법원은 이제 ‘단일 행정부 이론’을 사실상 확립했다. 이 이론은 모든 행정권이 대통령에게 귀속되며, 대통령은 행정권을 행사하는 모든 주요 연방 공직자를 해임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이론은 행정 활동과 입법 활동 사이에 명확하고 손쉬운 구분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단일 행정부 이론은 헌법 어디에도 없는 내용을 주장한다. 즉 행정적 성격이 조금이라도 있는 정부 활동은 반드시 대통령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사건의 구두변론 과정에서 케이건 대법관이 정확히 지적했듯이, 독립기관들이 수행하는 업무 가운데 상당수는 행정 기능으로 잘못 분류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의회가 정한 범위 안에서 법적 효력을 갖는 규칙을 제정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입법 기능이다. 의회는 수십 년 동안 이러한 기능을 독립기관에 위임해 왔으며, 월요일 판결 전까지는 이 기관들이 대통령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렇게 해왔다.
도대체 왜 연방의회는 공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하는 경우 법률을 통해 대통령의 해임 권한에 예외를 둘 수 없는가? 대통령은 그러한 법률들이 충실히 집행되도록 보장할 의무를 져야 한다. 그런데 월요일 이전까지는 누구도 그것이 헌법상 금지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다수 위원으로 구성된 독립기관들에 대해 의회가 행사하던 권한을 사실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앞으로 어떤 대통령도 의회가 그 권한을 되찾으려는 시도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다. 따라서 의회가 19세기 독립기관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형성했던 권력 분점 체계를 복원하는 법안을 초당적 압도적 다수로 통과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고서치 대법관은 행정부 권한을 과도하게 강화한 다수 의견에 동참했지만, 자신의 보충 의견에서는 대법원과 의회가 각자의 권한을 적극 행사해 권력분립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월요일 전까지 독립적이었던 기관들이 법률상 충분한 지침도 없이 막대한 입법 권한을 행사해 왔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불공정하거나 기만적인’ 경제 행위를 정의하고 금지하며 처벌하고, ‘공정하고 정직한 시장’을 집행하며, ‘공공의 편의·이익·필요성’을 충족하는 방송이 무엇인지 규정해 왔다.
고서치는 이러한 포괄적 입법권 위임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제 그 권한들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지는 공직자들에 의해 행사될 것이며, 대통령들은 “그 모든 영역과 그 이상의 분야에 대해 점점 더 큰 권한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정부의 ‘제4부’는 계속 존재하지만, 그 권한은 이제 대통령들에 의해 행사된다.
고서치는 헌법이 “정부의 세 개의 부를 만들었지 네 개를 만든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대통령이 이끄는 하나의 부만을 만든 것도 아니다”라고 상기시킨다. 그는 대법원이 의회의 입법권 위임을 제한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만 남아 있다. 대통령들이 그 모든 권한을 행사하도록 두거나, 아니면 그 권한들을 헌법의 제약 아래 두기 시작하는 것이다. …앞으로 확실한 길은 입법권과 사법권을 그것이 속해야 할 곳, 즉 의회와 법원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거대해진 연방정부를 다시 한정된 권한, 즉 헌법에 열거된 권한만을 가진 정부의 모습에 가깝게 만들려는 프로젝트다. 대법원의 의도는 어느 정도까지는 칭찬할 만하다. 그것은 끝없이 팽창하는 현대 정부의 복잡한 구조를 정리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법원은 행정 기능과 입법 기능을 깔끔하게 구분하는 대대적인 단순화를 선언했다.
그러나 권력분립 이론을 수호하려 했다면, 대법원은 앨버트 아인쉬타인의 경고를 새겨들었어야 했다. “어떤 이론의 목표는 환원 불가능한 요소들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월요일의 잘못된 과도한 단순화는 정부 권한을 정확히 정의한 뒤 그것들의 분리를 엄격히 집행하자는 고서치의 구상을 오히려 더욱 절실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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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F. 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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