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의 절반이 지나갔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는 7월,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폭염이 도시를 짓누른다. 이 열기는 피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지금 이 고비를 넘어서야 청명한 가을 하늘과 풍성한 수확을 맞이할 수 있다. 덥고 지친다는 이유로 주저앉아 봄의 포근함만 그리워한다면, 가을의 결실을 놓치고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계만의 섭리가 아니라 인류 역사가 증명해 온 생존의 법칙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절처럼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긴 시간의 축 위에서는 언제나 나선형으로 자유와 평등의 지평을 넓히는 방향으로 전진해 왔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갈등, 정치적 분열도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문명이 전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진통이다. 문제는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를 견뎌내는 인간의 능력이다.
역사에는 새로운 시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과거의 망령을 다시 불러낸 뼈아픈 기록이 가득하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들은 표현의 자유와 시장 경제를 얻었지만, 동시에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치안 부재, 불평등이라는 혼란을 마주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신분제를 폐지하고 시민 주권의 시대를 열며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위대한 가치를 창조했다. 그러나 공포정치와 전쟁의 피로에 지친 이들은 1815년 루이 18세의 왕정복고를 지지하며 역사의 진보에 등을 돌렸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이 출범시킨 바이마르 공화국은 당대 가장 진보적인 헌법을 가졌지만, 대공황과 초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무너지자 대중은 유약한 민주주의를 비난하며 ‘과거의 영광’을 약속한 히틀러와 나치즘에 열광했다. 그 끝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참한 전쟁과 스스로의 파멸이었다.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가 권리인 동시에 스스로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책임이기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상대적 박탈감이 더해진다.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사회에서 자신만 뒤처졌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보다 차라리 모두가 비슷하게 가난하거나 통제받던 과거를 심리적으로 더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새로운 시대는 명령과 복종이 아니라 자율성과 창의성, 다양성과 연대를 요구한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에 익숙한 이들은 이 변화를 그저 ‘혼란’으로만 받아들이고, 자신의 적응 실패를 인정하기보다 시대를 탓한다. 그렇게 과거에 머무르다 결국 역사에서 낙오한다.
그럼에도 인류는 결국 전진해 왔다. 영국의 명예혁명은 권력을 법 아래 두었고, 미국의 독립은 민주주의를 제도화했으며,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끝냈다.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은 군부 독재를 종식하고 대통령 직선제와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냈다. 이 변화들의 의미는 단순한 정치적 사건을 넘어 ‘되돌릴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헌법과 법치, 시민의 권리, 그리고 참여와 연대의 경험이 과거로의 회귀를 구조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이제 건국 250주년을 맞은 미국 앞에도 동일한 질문이 놓여 있다.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불안에 떠밀려 과거를 미화하고 AI 시대의 효율성을 이유로 권위주의를 향해 방향을 틀 것인가. 미국은 바로 그 기로에 서 있다. 폭염 속에서 멈춰 서면 가을을 맞이하지 못한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불편하고 불안하고 때로는 잔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과정을 견뎌야만 더 넓은 자유와 번영에 도달할 수 있다.
독립 250주년의 미국에 지금 필요한 것은 방향이며, 무엇보다 자유를 끝까지 감당하려는 유권자들의 인내와 의지다. 그리고 그 인내가 쌓일 때, 미국은 폭염을 견디고 푸른 가을의 결실을 맞이하는 것처럼 격변기를 지나 마침내 더 발전된 자유와 민주주의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