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늘어가던 시절, 우리는 경부고속도로가 창 밖으로 보이는 염곡동의 주택으로 이사했다.
계절을 품은 아담한 마당 한 쪽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구름이 나무 위를 지나가고, 햇살이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햇살 좋은 날이면 감잎이 바람에 흔들리고, 잎 사이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봄이 되면 나무에는 하얀 감꽃이 살며시 피어났다. 바람이 불면 마당으로 감꽃이 떨어져 하얗게 쌓였다. 그 꽃은 화려하지 않고 귀여웠다. 꽃 가운데에 구멍이 있어 실에 꿰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훌륭한 목걸이가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목걸이가 되기 위해 피어난 꽃 같았다. 꽃들은 잠시 머물다 가는 봄의 선물이었다. 마당은 잠시 작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숨어 있던 작은 감나무 열매가 꽃을 밀어내면 나무는 조용히 잎을 키우고, 여름 내내 묵묵히 열매를 품었다. 그리고 가을이 오면 감나무 가지는 아래로 휘었다. 나무가 주홍 빛으로 환했다.
그 감나무를 돌보는 이는 남편이었다. 봄이면 나무 둘레를 돌아가며 둥글게 파고 농장에서 거름을 얻어다 묻어 주었다. 뿌리는 흙 속에서 큰 숨을 쉴 수 있었다. 흙 냄새가 짙게 올라오는 날, 나무가 스스로 자라는 줄만 알았던 내 생각이 조금 부끄러웠다. 나무도 누군가의 손길을 먹고 자라는 것이었다. 정성을 들인 해 에는 유난히 감이 많이 열렸다. 남편은 봄부터 흙을 파고 거름을 주며 나무를 보살피고, 여름 동안 가지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그 일은 모두 하나의 사랑이었다. 남편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손으로, 기다림으로, 그리고 남겨 둠으로 나타났다.
감을 따는 날이면 마당에는 작은 잔치가 열렸다. 바구니에 감이 가득 했다. 이웃과 함께 나누었다. 남편은 꼭대기의 몇 개는 까치밥으로 두고 따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애써 키운 감인데. 따지 않은 꼭대기 가지의 감은 눈이 내린 날에도, 찬바람이 부는 날에도,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뒤에도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열매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비워 둔 자리였다. 사랑은 많이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데 있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 주었다.
자신이 맺은 열매를 모두 품지 않고, 하늘과 새들을 위해 몇 개를 남겨 두는 감나무의 마음도 그러했으리라. 사랑은 많이 거두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가꾸고도 조금은 남겨줄 줄 아는 마음에 있다. 사랑은 거창한 말이나 특별한 선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흙을 일구는 손길, 오랜 시간을 들여 기다리는 마음, 그리고 끝내 몇 개의 감을 남겨 둘 줄 아는 넉넉함인지도 모른다. 감나무 한 그루와 남편에게서 나는 그런 사랑 하나를 배웠다.
세월이 흘러 그 집을 떠난 뒤에도 감나무는 자주 생각난다. 하얀 감꽃 목걸이, 봄의 작은 웃음, 여름의 푸른 잎, 가을의 풍성한 열매와 그리고 겨울 하늘 아래 남겨진 까치밥, 그 모든 장면 속에 남편의 모습이 함께 있다. 남편의 사랑 하나, 감나무의 사랑 하나는 따로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같은 것이었다. 남편은 나무를 보살피고, 감나무는 열매를 맺고.
감나무 꼭대기 앙상한 가지에 남아 겨울 하늘을 붉게 밝히던 몇 알의 감처럼, 남편의 사랑 하나, 감나무의 사랑 하나가 지금도 내 마음에 따뜻하게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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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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