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우가 만난 셰프들 - 하노이 온빛(Onvit) 지준혁 셰프

지준혁 셰프가 온빛에서 요리를 플레이팅하고 있다. [지준혁 셰프 제공]

한우 채끝을 곁들인 온빛의 한상 메뉴. [지준혁 셰프 제공]
요리사에게 정체성이란 곧 진정성과도 연결된다. 다른 문화에 매료되어 그 길에 온몸을 던지는 이들도 많지만, 결국 자신의 뿌리를 요리로 증명해 낼 때 그 진정성은 가장 깊은 울림을 갖는다. 최근 발표된 미슐랭 가이드 하노이에서 한식으로 당당히 미슐랭 1스타를 거머쥔 이가 있다. 하노이 최초의 한식 파인다이닝 '온빛'을 이끄는 지준혁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프렌치와 재패니즈 베이스의 네오 비스트로로 현지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그가, 기어코 자신의 핏속에 흐르는 한식 DNA를 꺼내어 하노이 미식계의 정점에 서기까지. 정해진 뻔한 길을 뒤로하고 험난한 요리의 길을 택한 지 셰프를 만나 낯선 땅에서 써 내려가고 있는 그의 요리 철학을 들여다보았다.
장교의 길 접고 주방으로
지 셰프는 20대 초반 인서울 공대 전자공학과, 학군단(ROTC), 장교 특별 채용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길 한가운데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열심히는 하는데 목적의식이 없었어요. 거대한 물결에 그냥 휩쓸려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내 삶에 주체가 없다고 뼈저리게 느꼈죠. 그러다 막연하게, 먹는 걸 워낙 좋아하니까 문득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건강 문제로 장기 복무의 꿈을 접어야 했던 현실은 오히려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계기가 됐다. 군 면제를 받은 그는 스물두 살에 과감히 대학을 자퇴하고 칼을 쥐기 위해 일본 오사카의 쓰지 조리사 전문학교로 향했다. 이후 도쿄의 미슐랭 레스토랑 ‘아비스(Abysse)’에서 일하며 꿈에 그리던 파인다이닝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동경했던 주방의 현실은 가혹했다.
"하루 15시간, 16시간씩 일하고 맞기도 하고 욕도 참 많이 먹었죠. 제가 원하던 삶이 결코 아니었어요." 그에겐 지옥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지금 제가 구사하는 모든 핵심 기술은 그때 배운 거예요. 파인다이닝의 테크닉을 그 짧은 기간에 정말 스펀지처럼 익혔죠." 그러나 혹독한 노동으로 인해 허리 디스크 부상을 입은 그는 요리를 잠시 내려놓고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베트남에서 찾아낸 길
모든 게 끝난 것 같던 시기, 그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 건 베트남이었다.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지금 아내의 고국, 베트남 하노이를 여행하다 이룰 수 없을 것만 같던 파인다이닝의 꿈을 그곳에서 펼칠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파인다이닝은 기본적으로 인건비가 많이 들잖아요. 베트남은 인건비도, 월세도, 전반적인 물가도 훨씬 저렴할뿐더러 경쟁자도 많지 않았죠. 어차피 고생할 것이라면 하노이에서 내 식당을 만들어보자란 생각이었어요."
기대보다 훨씬 신선하고 질 좋은 베트남의 식재료는 단숨에 그를 매료시켰다. 푸아그라나 카라비네로 새우 같은 고급 수입 식재료도 한국보다 규제가 적어 자유롭게 다루는 재미가 컸다. 그렇게 그는 베트남 식재료에 재패니즈 프렌치 터치를 더한 네오 비스트로 장르의 레스토랑 '라브리(Labri)'를 열었다. 클래식하고 보수적인 프렌치 식당이 주류를 이루던 하노이에서 샹들리에 아래 하우스 뮤직을 트는 그의 식당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사업 역시 꽤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라브리가 성공 가도를 달릴수록 그의 내면에는 깊은 정체성의 혼란이 소용돌이쳤다.
"문득 생각해보니 저는 한국인인데 프렌치를 하고, 베트남 아내를 두고, 주방에선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었어요. 나는 누구지, 나의 진짜 뿌리는 어디지 싶었죠."
마침 호텔을 리뉴얼하려던 친구의 제안과 전 세계 미식계에서 약진하는 한국 셰프들의 활약이 그의 등을 강하게 떠밀었다. "뉴욕의 정식당, 아토믹스, 싱가포르의 메타, 내음 같은 세계적인 레스토랑도 다 한국인 셰프들이 이끌고 있잖아요. 제가 한국인이면서 굳이 프렌치를 고집할 이유가 있나 싶었죠."
추억의 맛 좇아, 다시 한식
그렇게 2025년 '온빛'을 열며 그는 비로소 오랜 방황을 끝냈다. 아이디어와 영감을 억지로 쥐어 짜내려 했던 라브리 시절과 달리, 온빛의 메뉴는 그의 가장 내밀한 추억에서 길어 올린 것들이다. 정식으로 한식을 배운 적은 없지만, 순천에서 자라며 미식가 아버지와 손맛 좋은 어머니 밑에서 자연스레 쌓아왔던 한국의 맛이 그의 혀끝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이맘때 이 날씨에 엄마가 뭘 해주셨더라 떠올리죠. 항상 거기서 출발해요. 지난겨울엔 어머니가 굴을 듬뿍 넣어 끓여 주시던 김국이 떠올라 매생이 굴국을 만들었죠. 남의 문화를 억지로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젊은 시절의 엄마와 다시 요리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라 행복감이 들죠."
온빛의 요리는 버터와 크림을 과감히 배제하고, 한국의 장(醬)과 참기름을 활용해 한식 특유의 슴슴하고 편안한 맛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의 숙제는 강렬한 향신료에 익숙한 베트남인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한식을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였다.
해답은 두 식문화 사이의 공감대에서 찾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온빛의 시그니처 메뉴인 전복죽이다. 지 셰프는 두 나라의 연결 고리로 아시아 전역에서 친숙하게 먹는 죽을 택했다. "베트남에선 보통 죽을 입자감 없이 완전히 갈아 버려요. 밥알의 입자가 몽글몽글 살아 있는 한국식 죽을 베트남 쌀로 만나게 한 거죠. 익숙함과 색다름이 공존하는 요리랄까요."
쌀은 향이 강한 베트남 고급 품종 쌀 ST25를 썼다. 쌀 향이 강한 만큼 참기름은 두세 방울로 억제하고, 깊은 채수와 한국 완도산 전복, 게우(내장) 소스로 맛을 냈다. 버터와 크림으로 범벅된 무거운 여느 파인다이닝에 지친 현지의 중년 손님들은 속이 편안한 한식의 매력에 흔쾌히 마음을 열었다.
퓨전 아닌 두 문화의 '조화'
다른 문화권의 음식이 결합되면 종종 정체성을 알 수 없어져 흔히 '퓨전'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지 셰프는 온빛에선 퓨전보다는 하모니를 추구한다고 강조한다. "제가 정의하는 퓨전은 상대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 없이, 그저 멋있어 보이려고 메뉴에 외국어를 끼워 넣듯 장점만 얄팍하게 가져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반면 하모니는 그 나라의 식재료와 문화, 삶의 방식을 진심으로 존중한 바탕 위에 제 철학을 자연스럽게 결합하는 거고요."
그에게 요리란, 또 철학이란 무엇일까. "요리는 '헤아릴 료(料)'와 '다스릴 리(理)'로 이뤄진 단어입니다. 불의 온도와 식재료의 간을 맞추고, 주방의 팀원들을 살피며, 궁극적으로 내 감정과 철학까지 헤아리고 다스리는 철학적 행위죠. 현란한 스킬은 10년이면 누구나 다 잘하게 됩니다. 결국 요리사의 급을 가르는 건 철학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철학을 요리로 증명해 내는 것, 그것이 저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만약 한국에 남았다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들과 비교당하며 일찍 지쳐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이국의 도시에서 자신만의 요리를 피워냈다. 베트남에서 한식의 위상을 알리며 스스로의 음식 세계를 더욱 단단히 갖출 지 셰프의 다음 접시가 몹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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