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기다리는 업종이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씨뿌리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부터 배워야 한다. 오늘 눈길 손길 발길을 줬다고 내일 바로 결과물이 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오이 나무에 물을 줬다고 내일 오이가 맺히지 않는다. 때가 되면 줄기가 올라가고, 푸른 잎이 넓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힌다.
농사는 끝없이 내 자신과의 싸움이다. 금손(green thumb)이 되려면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큰 농장이라고 힘이 더 들고, 작은 텃밭이라고 해서 힘이 덜 드는 게 아니다. 농장이든 작은 텃밭이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콧구멍에서 김이 서릴 정도로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 토양에 씨를 뿌린다고 저절로 발아하고 자라는 게 아니다. 농사는 경험자를 이기지 못 한다. 경험자의 이야기는 농사교본이다. 농사 경험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배우고,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인내해야 한다. 몸이 뻐근하면 타이네놀을 먹고 텃밭에 나가야 한다.
농작물은 주인의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먹고 자란다. 농작물은 주인과 마음이 통하면 미소 지으면서 훤한 모습으로 곁에 다가 온다. 텃밭은 인간처럼 배신하거나 저울질 하지 않고 어김없이 자연의 선물을 제공해 준다. ‘세상에 쉬운 일 없고, 거저 얻어지는 것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우리집 텃밭은 농장이 아니고, 부부가 가꾸는 아담한 공간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한국 작물을 농기계, 화학비료 등 사용하지 않고 햇빛, 물(빗물), 토양의 3대 조건에서 자연 그대로 재배하는 토종 텃밭이다. 사랑의 천연 비료 3요소 - 눈길, 손길, 발길 - 로 날마다 대화를 한다. 도회지 주거지에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터가 있다는 게 천운이다.
결국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텃밭은 그것을 조용히 가르쳐 준다. 텃밭은 큰 위로의 말을 해주지 않는다. 괜찮다고 말해 주지도 않는다. 텃밭은 내 발걸음 소리를 알고 있고, 내 사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텃밭으로 나가 흙을 만진다. 혼자 텃밭에 앉아서 일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좋아서 하는 텃밭일은 엔돌핀이 가득 차 오르는 멋진 시간이며 공간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농작물과 호홉하면서 때를 기다린다.
농작물은 인고의 산물이다. 텃밭에서 즐기면서 좋아서 하는 일은 만병통치약이다. 막힌 콧구멍을 뚫어 주고, 아픈 허리를 낫게해 준다. 싱싱한 채소를 뜯어 먹고, 신선한 열매를 따서 먹노라면 힘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기쁨만 남는다. 친한 지인과 농작물을 나눔하는 재미도 있다. 이웃과 나누면서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훌륭한 매개체 역할도 한다.
사람들은 텃밭 가꾸기가 아주 힘든 일이라고 말하지만,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 누구하고 이기고 지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 생활비가 나오는 일도 아니다. 일이 힘들기 때문에 도전욕이 발동하고 보람을 느낀다. 텃밭의 잉여 농작물은 그냥은 줘도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 취미로 가꾸면서 즐기고 나눔을 한다. 미워할 시간도 없다. 외로워할 짬도 없다. 우울증에 빠질 여념도 없다.
무공해 유기농 텃밭을 가꾸면 유해식품을 멀리하고 내 가족의 건강한 식생활을 챙길 수 있다. 병원에 가는 횟수와 번거러움을 줄일 수 있다. 흙을 만지는 일을 그만두지 못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참살이(Wellness) 바람을 타고 텃밭을 이용해 직접 채소를 길러 보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음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몸이 먼저 텃밭으로 향한다. 비가 온 다음날 아침에는 세수보다 먼저 텃밭으로 발길이 움직인다. 흙을 대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늙어감을 어떻게 품고 사는지 알 수 있다. 텃밭 가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시든 잎을 떼어내는 조용한 시간 속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가 숨어 있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해준다. 말 그대로 심은대로 거두게 한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씨앗을 심고, 잡초를 뽑고, 기다림을 배우는 과정은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다. 텃밭을 통해 삶의 위로와 인생의 가치를 찾는다. 텃밭이라는 공간에서 삶의 지혜와 나눔과 힐링을 배운다.
농사는 본래 혼자 축적할 수 없는 지혜다. 좋은 씨앗은 건너가야 하고, 경험은 사람 사이를 지나야 오래 살아남는다. 농사는 함께 먹고, 함께 키우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약속이며 사랑이다. 자연에서 얻은 귀한 식재료로 건강을 지킬 수 있고 힐링도 할 수 있어서 매일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다시 텃밭으로 눈이 가고 몸이 간다.
<
정성모 페어팩스,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