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대미투자 발표 연기…오는 21∼22일 국회 보고 일정 조율중
▶ 한국형 원전 두고 막판 이견…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사업까지 첩첩산중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오른쪽)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지난해 7월 회의 모습 [산업통상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정부가 대미 투자 협상 과정에서 대형 원전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사업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해 국회 보고를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17일(이하 한국시간)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전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재정경제기획위원회에 이날로 예정됐던 국회 보고 일정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
국회 보고가 미뤄지면서 이르면 18일로 예상됐던 2천억달러(약 272조원) 규모 대미 투자 1호 사업 양해각서(MOU) 서명과 프로젝트 발표도 연기될 전망이다.
당초 예정됐던 '이르면 이번 주 발표' 계획은 사실상 무산된 상황이다.
여권 관계자는 "MOU 최종 타결 전에 산업부가 국회에 보고를 하는 것인데 아직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보고 일정을 미룬 것"이라며 "현재 국회 보고 일정은 22일로 얘기되고 있는데, 협상 진척 속도에 따라 21일로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야당은 추석 이후로 보고를 미루자는 의견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보고가 연기된 핵심 배경으로는 원전 분야 이견이 꼽힌다. 한미는 미국에 건설할 대형 원전 8기 중 6기는 웨스팅하우스 모델인 AP1000, 2기는 한국이 개발한 APR1400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조율해왔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웨스팅하우스가 한국형 APR1400의 자국 내 건설에 난색을 보이며 막판 협상에 진통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APR1400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인증을 통과해 기술적 걸림돌은 없다. 하지만 미국으로선 안방에서 주력 모델인 AP1000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APR1400이 건설되면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원전업체 수주 기회가 줄어든다"며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국형 모델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전 문제는 웨스팅하우스에 대한 지분·의결권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한국은 체코 원전 수주 당시 맺은 불리한 계약 조건을 개선하고 향후 해외 원전 수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분 20% 안팎과 이사회 참여 등 실질적 의결권을 요구해왔다.
반면 미국은 의결권 없는 5∼10% 수준의 소수 지분 참여만 허용하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방식인 파이로프로세싱 사업 투자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여권 관계자는 "미국 쪽이 대미 투자 협상 과정에서 미국 내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할 파이로프로세싱 사업 투자를 우리 측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를 섭씨 500∼650도의 녹인 소금(용융염)에서 전기화학 반응으로 처리해 우라늄과 초우라늄 원소를 회수하는 건식 재처리 기술이다. 미국에는 지난해 기준 9만5천t(톤)이 넘는 사용후핵연료가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로서는 이 사업에 자금이 추가 투입될 경우 전체 대미 투자 규모가 지난해 관세 협상에 합의한 2천억달러 투자 한도를 넘어설 수 있어 고심이다. 더욱이 미국이 이 사업을 핵농축 문제와 연계하고 있어 정부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인공지능(AI) 전력난을 해소할 최적의 방안으로 꼽히는 소형모듈원전(SMR) 상업화를 위해 핵농축 기술 확보가 필요한 우리 정부로서는 딜레마에 갇힌 상황인 것이다.
이 밖에도 대미 투자 1호 사업으로 유력한 텍사스 가스복합화력발전소의 전력 수요처 보증 문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편입 여부, 사업별 수익·손실 배분 문제 등이 협상 테이블에서 여전히 쟁점으로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첫 투자금 송금 규모를 둘러싼 이견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 측이 연간 대미 투자 한도(200억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현금(100억달러 안팎)을 연말까지 송금하라고 요구해 최종 합의에 제동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당초 정부는 이달 첫 대미 투자금으로 22억달러 이상을 미국에 송금한 뒤 내년부터 연간 최대 200억달러 한도에서 투자 집행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여권 관계자는 "100억달러 선불 요구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협상 스타일"이라며 "초반에 세게 던져놓고 무난하게 협상하다가 막판에 다른 주제로 의제를 전환하며 원하는 바를 관철하려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가시적인 성과를 유권자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이같은 무리한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대미 투자 관련 발표 일정이 미뤄진 데 대해 "한미 간 이견이 있다기보다 국내 절차적 문제를 좀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산업부는 대미 투자의 송금 규모와 시기, 1호 사업 발표 등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미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며, 접점 모색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며 "국익 관점에서 협상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