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정 전 한미사진영상협회 회장·정지현 권사 부부
▶ 볼리비아서 봉제공장·브루클린서 신발가게 맨손으로 개척

조지 정 · 정지현 권사 부부
▶삶의 고비마다 신앙의 힘으로 버텨$부인은 라인댄스로 활력
▶15년간 배운 사진으로 커뮤니티 행사마다 무보수 봉사
사람의 인생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누구는 가보지 않은 길을 선택해야 하고,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다시 일어나야 하며, 때로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미지의 땅을 향해 떠나야 한다. 조지 정(한국명 정궁언) 전 한미사진영상협회 회장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가난한 시절을 지나 남미 볼리비아의 낯선 땅을 개척했고, 다시 뉴욕 이민사회의 치열한 현장에서 사업가로 살아남았으며, 이후에는 사진예술을 통해 커뮤니티에서 봉사하는 삶을 걸어왔다.
그 곁에는 평생의 동반자 정지현 권사가 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전쟁과 가난, 이민과 도전, 신앙과 봉사가 어우러진 한인 이민역사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사진1]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전쟁을 겪은 소년
조지 정 회장은 1942년 충청남도 대덕에서 2남 2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네 살 되던 해 어머니를 잃었고, 이어 한국전쟁으로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 먹고사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대, 어린 정궁언 소년은 일찍 삶의 무게를 배워야 했다.
청년이 된 그는 직장생활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갔다. 하지만 당시 한국 사회는 너무나 궁핍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에게 이를 충족할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다. 그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꽉차있었다. 그 무렵, 친구의 형이 정착해 있다는 남미 볼리비아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 가족을 남겨두고 떠난 볼리비아행
경남 삼천포 출신의 개인병원 간호사였던 한 살 아래의 정지현 씨를 만나 결혼해서 아들을 얻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웠다. 결국 그는 인생 최대의 결단을 내렸다.
1976년, 여덟 살 난 아들과 아내를 한국에 남겨둔 채 홀로 볼리비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어도 현지 사정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젊음과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무조건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믿음과 결단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 맨손으로 시작한 남미 개척
볼리비아에서 언어도 잘 안 되는 상태에서 그는 팔을 걷어부쳤다. 정 회장은 바로 의류 판매를 시작하고 현지 시장을 익혀가며 쉬지 않고 일했다. 2년 뒤 아내와 아들을 불러들였고, 부부는 함께 봉제공장을 운영했다.
전문 기술도 자본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당시 호황을 맞은 봉제업 덕분에 어렵지 않게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와 경제적 변동으로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그에게는 또 한 번의 결단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미국이었다.
■범죄도시 브루클린에서 버틴 한국인 부부
볼리비아에서 미국학교를 다녔던 아들을 먼저 미국에 사는 지인 댁으로 보낸 뒤 부부는 차례로 뉴욕에 정착했다. 퀸즈 엘름허스트에 터를 잡은 이들은 다행히 운이 닿아 브루클린 디칼브 애비뉴에 있는 신발가게를 인수했다. 나이키와 리박, 푸마와 아디다스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라 매출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당시 브루클린은 강도와 절도가 잦은 지역. 정 회장은 일하면서 여러 차례 폭행을 당했고, 한 번은 머리를 크게 다쳐 병원에 실려가는 일도 있었다.
상품을 도난당하는 일도 다반사라 부부는 가게를 떠나지 않고 가게에서 아예 먹고 자다시피 하면서 버텼다. 두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기죽지 않고 일했다. 맨하탄 미드타운에도 매장을 열었고, 마침내 엘름허스트에 3층 건물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이후 다른 사업에도 도전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자 사업체를 넘기고 그들은 다시 볼리비아로 건너가 의류가게를 10년간 운영했다. 그러나 예전 같은 성과를 얻지 못해 결국 뉴욕으로 돌아왔다. 볼리비아, 미국을 오가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지만, 정 회장 부부는 마지막까지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법은 없었다.
■사업보다 먼저였던 신앙
정 회장 부부가 가게에서 먹고 자면서도 놓지 않은 것이 있었다. 강한 신앙심, 바로 주일성수였다. 처음 맨하탄 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데 이어, 이름이 바뀐 프라미스교회에서 현재까지 그들은 45년간 믿음을 이어오고 있다. 정지현 여사도 권사로서 충실히 직분을 섬겨왔다.
삶의 고비마다 두 사람이 의지한 것은 돈이나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었다. 지금도 부부는 자신들이 누린 모든 축복을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 15년간 배운 사진 실력, 커뮤니티에 무보수 봉사
정 회장이 인생에서 특히 보람을 느끼는 일은 사진이다. 뉴욕에서 사진 전문가를 통해 15년간 열심히 배운 실력을 취미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롱아일랜드한인회 문화축제와 6·25참전용사 관련 행사 등 여러 한인단체 행사를 두루 찾아다니며 무보수로 촬영해 주었다.
월간잡지 뉴욕스토리 S. CASA의 표지사진을 3년간, 잉글우드 병원의 의료세미나 행사도 4년간 무보수 촬영으로 헌신 봉사했다. 한인사회 각계의 소중한 기록을 남긴다는 보람으로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기부한 것이다. 사진 전문가 조덕제 회장과 함께 한미사진영상협회 제2대 공동회장을 지내며 회원들의 단합과 화합에도 열심히 힘을 보탰다.

[사진 2]
■정지현 권사, 라인댄스로 이웃에게 활력을
정 여사 역시 남편 못지않게 봉사에 적극적이었다. 사진협회 회원들의 단체출사 때마다 간식을 넉넉히 준비하며 참가한 회원들을 세심하게 챙겼다.
또 고교 시절에 했던 무용부 활동을 계속 잇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한 성당 지하에서 어느 날 중국계 선생이 하는 라인댄스와 영상을 접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배워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리더가 되었다.
정 권사는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까지 10년간 중국인과 한인 등 최대 143명에게 라인댄스를 무료 지도하며 즐거움과 활력을 선사했다.
■이제는 카메라를 메고 자연 속으로
치열했던 이민의 시간을 뒤로하고 요즘 부부가 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은 매주 한 차례 카메라를 메고 자연을 찾는 일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거주지 인근 공원이나 경치 좋은 곳을 찾아 풍경을 담는다. 그 때는 사진 동호인인 심영주 작가도 동행한다.
고단한 세월을 견뎌온 이들에게 이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조지 정 회장과 정지현 권사 부부는 오늘도 어김없이 카메라를 메고 세상으로 나선다. 그 렌즈에는 아름다운 풍경뿐 아니라 가족을 향한 사랑, 신앙에서 얻은 감사, 그리고 받은 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온 두 사람의 인생이 함께 담기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어렵고 고달팠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자신들이 걸어온 생은 잊지 못할 추억, 한 장의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정 회장 부부가 아들네 가족과 함께.
“손주들은 생의 큰 기쁨⋯노후는 받은 은혜 나누며 살고파”
■ 손주들이 주는 즐거움
외아들 잔 정 씨(한국명 정영준·57)는 부모의 힘든 이민가정에서 자라면서도 잘 성장해 현재 한국의 모자 전문 회사 유풍(Flexfit)에서 실장으로 착실하게 근무하고 있다. 기독교학생회에서 만난 아내와 가정을 이룬 아들은 두 자녀를 두었다. 정 회장 부부는 이들 두 손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남다르다.
손녀는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나라의 식품을 운송하는 대형 화물수송선에서 일하고 있고, 손자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재원이다.
평생 가족의 미래를 위해 바쁘게 살아온 부부에게 자녀와 손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는 모습은 무엇보다 생의 큰 기쁨이다.
부부는 자신들이 이모저모로 받은 은혜를 이웃과 나누며,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조용히 돕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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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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