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체로 두 개의 모습이 있다. 자신의 본래 모습과 남에게 보여지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본래의 모습일까 남에게 보여지기를 바라는 모습일까? 모차르트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 중 어떤 작품이 모차르트 본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 한다. 모차르트의 작곡 수법은 (글로 치자면) 일필휘지, 단번에 써 내려가는 스타일이었다. 즉 신중을 기하고 고치고 또 고쳐 쓰는 스타일은 모차르트 스타일이 아니었다. 즉흥성과 영감, 자연미… 이것이 바로 모차르트의 묘미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모차르트 조차도 일필휘지로 쓰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미완성으로 남은 레퀴엠(진혼곡, D단조)을 말한다.
우리는 천재 모차르트를 말함에 있어 제아무리 모차르트라 하더라도 쓰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더구나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사후 세계의 두려움과 슬픔의 곡조를 어떻게 천재라고 해서, 그것도 주로 코믹 오페라에 몰빵하던 모차르트가 단숨에 써 내려갈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의문이 남는다. 보통 오페라 하나에 3개월이 넘지 않았던 모차르트가 규모의 3분의 1 분량의 레퀴엠을 버버거리다 중단해 버리고 말았다?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여기서 그 이유를 추론해 보면, 이 작품은 모차르트가 최소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거나 모차르트가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제자 쥐스마이어에 의해 완성된 미완성 작품이었다. 알려졌다시피 모차르트는 작곡의 천재였다. 작곡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레퀴엠 한 곡을 쓰는 데 몇 달을 허비할 만큼 신중한 작곡가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곡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어딘가 이상하다. 그것은 모차르트가 건강이 안 좋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시기에 수 배 이상 규모가 컸던 ‘마술피리(魔笛)’ 는 완성했는데 선불까지 받은 레퀴엠은 미완성으로 남았다? 어딘가 성급한 결론같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영화 ‘아마데우스’같은 작품에서는 모차르트가 마치 최후의 대작을 완성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다가 사망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차르트는 죽었다. 이제 모차르트를 위한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한 때였다. 우연히 발견된 미완성 레퀴엠. 모차르트의 장례식을 앞둔 시점이었다. 모차르트를 극화시키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도 없었다. 제일 유명한 제 8곡 라크리모사(눈물의 날) 조차 모차르트의 작품인지 불분명했다. 처음 여덟마디는 모차르트가 쓴 흔적이 분명한데 다음 부터는 쥐스마이어에 의해 완성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곡 고전파 음악 치고는 너무 앞서가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물론 모차르트(1756-1791)의 작품들은 말년이 이르러서 다소 중후해 진다. 마치 베토벤(1770-1827) 시대의 예고편 같다고나할까. 교향곡(39, 40, 41)… 현악 4중주 (21, 22, 23)… 오페라 ‘마적(魔笛)’, 레퀴엠에 이르기까지 마치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옷을 입고 만든 것 같다. 특히 레퀴엠…망자를 위한 곡치고는 너무 아름다웠다. 물론 레퀴엠 측면에서 아름다운 것이었지만 이 레퀴엠을 들은 하이든은 이 한 곡 만으로도 모차르트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쇼팽의 wish 명록 1위에도 자신의 장례식에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해 달라는 것이었다.
역사상 모차르트만큼 유명했지만 또 그의 삶이나 최후 등이 신비에 싸여있는 작곡가도 없었다. 도대체 모차르트가 왜 죽었는지 그리고 무덤은 어디있는지, 정확한 진실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너무 갑작스러운 사망이어서 당시에는 독살설 같은 것이 공공연연하게 퍼져있곤 했었는데 섬모충 감염내지 과로사로 추정하지만 살리에리와의 연관성(?)도 알수 없는 일이었다. 예술은 그것을 지켜줄 주인을 잃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더 뚜렷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곤 한다.
모차르트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리고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쓰지 못했다는… 죽음 너머의 그 슬픈 곡조… 레퀴엠은 어떤 곡이었을까…레퀴엠은 각자 들려오는 대로 다르겠지만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먼 영혼의 여행을 떠났던 한 천재의 쓸쓸한 뒷 모습, 선율 너머 깊은 실존이자 감동이었는지도 모른다. 총 14곡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오스트리아의 귀족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 1791년 4월 20세로 사망한 아내를 위해 익명으로 곡을 청탁한 것이 그 시작이었으며 첫 곡 ‘안식을 주소서’와 제2곡 ‘자비를 베푸소서(Kyrie)’는 모차르트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 (이 작품은 8월16일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서 열리는 SF 매스터 코랄 정기연주회에서 연주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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