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신문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신문사에 근무하다보면 마치 지구상의 마지막 멸종 위기종 처럼 아슬아슬함을 느끼곤 한다.
20년 전만해도 신문사의 오늘을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물론 한국일보(샌프란시스코)도 번영하고 있었지만 크로니클 같은 영자 신문도 선데이 판의 두께가 어마어마할 정도로 종이 신문은 위력을 떨치고 있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신문의 위기감이 점차 확산됐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도태의 시간이 다가 올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다. 물론 아무리 CD 음악들이 판을 치고 있어도 여전히 LP를 듣는 사람들은 존재하듯 종이 신문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20 ~ 30년 전의 전성기는 아마도 다시는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서울 토박이이다. 서울이 비록 고향이긴 하지만 내가 자랄 때만해도 서울은 먼지가 폴폴나던 더러운 도시였다. 포장 안 된 도로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심을 가로지르는 자동차들과 낡은 버스에서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 시내 한번 나갔다오면 코끝이 시커멓게 될 정도였다. 그런 서울이 이젠 혼자 여행하기 좋은 도시 중에서도 세계 1위로 뽑혔다고 한다. 그만큼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가 됐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서울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왜냐하면 나의 서울은 언제나 70년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추억이 사라진 장소는 낯선 이방인의 거리에 불과하다. 물론 그때가 그리운 것은 70년대의 서울이 꼭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살아보니 그 때가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거리를 추억하는 감상주의 때문에 70년대가 그리운 것은 아니다. 비록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정말 사람사는 냄새가 가득했다. 종로 뒷골목 포장마차에서 찐빵이나 만두를 먹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영등포 시장 안의 중국집에서 수타국수 짜장면을 먹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단성사 극장 앞에서 손을 호호불며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서 본 적이 있으십니까? 눈내리는 명동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이런 모든 것 보다 사람사는 느낌이 가득했던 것은 거리마다, 책방마다 가득했던 출판물의 풍성함때문이었다.
인터넷?... 물론 편리하고 꼭 필요한 문화다. 휴대폰 하나로 어디를 가든 불편없이 정보를 입수하고 유튜브다 뭐다 영상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왠일인지 사람들의 얼굴은 편리함 속에 행복은 없다. 70대의 서울은 쇼트닝 기름에 튀긴 밀가루 핫도그 몇개에 사람들은 행복했으며 길거리 풀빵 몇개에도 훈훈한 겨울을 느낄 수 있었다. 찬 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근처 다방에서 쌍화차 한 잔으로 겨울을 녹일 수 있었으며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연주는 못 들어도 종로의 르네상스, 충무로의 필하모니 음악감상실에서 베를린 필의 연주를 무한히 감상할 수 있는 여유… 사회분위기는 조금 딱딱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한극장, 스카라, 명보, 피카디리같은 극장에서 명화를 감상하며 현실을 잊을 수 있었고, 짬뽕 한 그릇에 행복해 하던 소박한(?) 여유가 있었다.
거리는 넘쳐나는 잡지들로 인해 심심할 틈이 없었다. 가판대마다 각종 주간지는 물론 스포츠 신문, 연예 잡지, 신동아, 월간 중앙, 여성중앙이다 뭐다 온갖 읽을거리가 넘쳐나고 책방들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저녁에 잠깐 나오는 TV가 지루한 사람들은 무협지… 통속 소설… 대하소설들을 읽으면서 겨울을 나고 당구장이다 탁구장이다 몰려 다니면서 히히덕거리며 살았다. 요즘처럼 K-pop이다 뭐다 섹시하고 화려한 춤은 아니지만 통기타의 서정적 가락 속에서 서울아리랑을 노래하던 70년대 사람들…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그리운 추억에 불과하다.
나는 1980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왔다. 그때만해도 샌프란시스코는 지금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먼지가 폴폴나던 서울 거리와 비교해보면 정말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뭔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을만큼 샌프란시스코는 아름다웠다. 물론 그것은 외형적인 차이일 뿐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외로움을 버티게 해 준 것은 오히려 70년대의 서울… 불편했지만 아날로그의 따스했던, 종이신문같은 그리움과 향수였다. (어느덧 8.15 광복절… 폴 모리가 진하게 울리는 ‘아리랑’ 을 들으며 서울거리를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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