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피곤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운이 없으니 보약을 먹고, 체력이 떨어졌으니 고기를 더 먹고, 아침이 힘드니 비타민이나 에너지 드링크를 찾는다. 물론 실제로 몸이 허해서 보충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한의학에서 피로는 단순히 부족해서 생기는 증상만은 아니다. 어떤 피로는 기혈이 모자라서 생기지만, 어떤 피로는 몸 안에 열, 담음, 습기, 체기 같은 것이 쌓여 기의 흐름을 막아서 생긴다.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무조건 보하기만 하면, 피로는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무겁고 답답해질 수 있다.
허한 몸과 막힌 몸은 다르게 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병을 볼 때 허실(虛實)을 중요하게 본다. 허하다는 것은 몸에 필요한 기운과 혈, 진액이 부족한 상태이고, 실하다는 것은 몸 안에 불필요한 것이 쌓여 흐름을 막고 있는 상태이다. 쉽게 말해 허한 몸은 연료가 부족한 차와 같고, 실한 몸은 연료는 있는데 도로가 막힌 차와 같다. 연료가 부족한 차에는 기름을 넣어야 하지만, 도로가 꽉 막힌 차에 기름만 더 넣는다고 빨리 달릴 수는 없다. 오히려 더 답답해질 뿐이다. 피곤하다는 증상은 같아 보여도, 그 원인이 허한 것인지 막힌 것인지에 따라 치료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좋은 음식도 막힌 몸에는 부담이 된다
이것이 몸에 좋다는 것을 열심히 챙겨 먹고도 몸이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이다. 사실, 종일 앉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고, 불규칙한 식사와 야식으로 위장을 혹사하는 현대인의 만성 피로는 허증보다는 오히려 막힌 유형에 가까울 때가 많다. 한의학적으로는 대사 노폐물인 담음(痰飮), 소화되지 못한 찌꺼기인 식적(食積), 울체된 열이 기혈이 도는 길을 곳곳에서 가로막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사람에게 인삼, 홍삼, 기름진 보양식, 강한 보충제를 계속 더하면 비위는 더 부담을 받고 담음과 열은 더 쌓인다. 도로가 꽉 막혀 있는데 더 많은 차를 들여보내는 것과 같다. 기운을 내려고 먹은 것이 오히려 몸을 더 무겁게 만드는 이유이다.
비위는 기혈을 만드는 공장이다
한의학에서 비위는 음식을 소화해 기혈을 만드는 근본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비위가 약하거나 막혀 있으면 그것을 내 몸의 에너지로 바꾸지 못한다.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데 좋은 재료만 계속 밀어 넣는 것과 같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재료가 아니라, 공장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다. 과식과 야식을 줄이고, 찬 음식과 기름진 음식을 피하며, 따뜻하고 소화가 쉬운 음식을 먼저 택하는 것이 순서이다. 보충은 그다음이다. 몸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보약도 보약답게 작용한다.
먼저 뚫고, 그다음 채워야 한다
막힌 몸에는 먼저 소통이 필요하다. 한의학이 무조건 보하는 처방만 쓰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의학은 병을 볼 때 부족한 것을 채우는 보(補)와, 넘치거나 막힌 것을 덜어내는 사(瀉)를 함께 저울질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를 보하는 치료보다 체기를 풀고, 담을 삭이고, 열을 내려 막힌 순환을 여는 치료가 먼저 필요하다. 침 치료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부족한 곳을 채우기보다 근육과 내장, 위아래의 흐름을 조절해 몸이 스스로 회복할 길을 열어주는 데 의미가 있다. 물길이 막힌 논에 물을 더 붓기 전에 먼저 수로를 터야 하듯, 우리 몸도 막힌 흐름을 풀어야 새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문의 (703)942-8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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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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