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베이지역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겨울이었다. 1월인데도 포근했고 비가 내리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이 곳의 비는 몸을 적시기 보다는 마음을 적시는 것 같았다. 소나기 처럼 뇌리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사연이 있는 듯한 슬픔과 연민이 피어오르는 그런 아름다움이 있었다. 도시의 풍광때문이었는지, 겨울비가 내리는 거리를 마치 윈도우 쇼핑을 하듯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던 기억이난다. 그당시 나는 무엇을 쇼핑하고 싶었던 것일까? 가진 것은 주머니에 단돈 20달러… 그럼에도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며 아, 넉넉한 곳에 살면 마음도 넉넉해 질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었을까. 물론 그것은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환경이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꺼지지 않는 청춘의 꿈이 뭉개뭉개 피어오르던 시절이었다.
요사이 한국의 오페라 무대에 백석종이라는 테너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본보 기사에도 나갔지만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던 가난한 음악도였다. 샌프라시스코 오페라의 젊은 음악도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발탁되어 SF 오페라 하우스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하여 2021년 LA의 Loren L Zachary Society national Vocal Competition에서 우승하면서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런던 로얄 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에서 부름을 받으면서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 가수로 활약하고 있다. 백석종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가 올린 Youtube 영상 중에 비오는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우산을 받쳐든 그의 모습이 푸치니의 아리아들과 너무 어울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흔히 테너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물론 로마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 않았다는 말을 페러디한 것이겠지만 한 명의 테너가 만들어지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캘리포니아에 오래 살아보니 처음 이민 왔을 때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오르곤 한다. 첫째 이곳에서 돈 많이 벌 생각말라. 둘째 영어 일년 안에 못 배우면 평생 못 배운다. 셋째 그저 외국 나왔다하며 살면된다. 그 세가지가 한 개도 틀리지않고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은 지금도 신기하다. 그의 말대로 그냥 먹고살고 있을 뿐이며 그저 외국 나와 살고있다는 기분으로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가끔 푸치니의 음악을 들을 때면 이곳에 첫 발을 딛었을 당시 비오는 샌프란시스코 거리가 떠오르곤 한다. 참 얼마나 많은… 수많은 시간들을 현실과 꿈 속에서 좌절을 겪으며 이민생활을 이어왔던가. 한 명의 테너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 처럼 그 어떠한 삶도 결코 한 사람의 테너 인생에 견주지 못할 인생은 없을 것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도전이며 추억은 애절할 뿐이다.
나는 푸치니의 음악을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이 너무 처량하고 잊고 싶은 젊은 날의 상처를 자꾸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푸치니의 음악을 듣곤한다. 그것은 라보엠, 나비부인 등… 비극, 절망빼고는 논할 것이 없지만 푸치니의 음악이야말로 바로 삶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푸치니는 젊은 시절 무척 가난하고 어려운 보헤미안 생활을 보내지 않으면 안됐었다고 한다. 푸치니의 사실주의가 탄생한 것은 이때문인지 모르지만 푸치니의 음악에는 현실이 있고 현실의 문제는 사실이요 그 사실의 문제는 바로 애환이기도 했다.
사실주의, 현실을 바로 본다는 것은 잔인한 폭우이기도 하다. 마치 제비뽑듯 베이지역에 떨어진 우리의 삶은 운명적 선택이었겠지만 좋든 싫든 이곳에서 살아야한다는 것은 각자 자신의 선택일 수 밖에 없다. 가끔은 인생에서 꿈과 현실이 동화되는 그런 여유와 브랙타임도 있으련만 삶의 순간순간은 그저 왔다 사라지는 앙상한 뼈… 한 순간의 휘파람인지도 모른다. 푸치니(의 아리아)를 들으며 지나는 SF의 언덕 … 창문에 반사된 붉은 노을은 왜 그리 인생의 쓰라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지… 이제는 먼 시간을 돌아 사실의 이야기들이 전해주는 애수의 노래들을 듣자니 그저 고독하게 서 있는 풍차처럼… 마주한 찰라의 삶이 마치 한편의 아리아 처럼 묘하게 가슴을 때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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