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中 위협, 법률전·사이버까지 다층화…美 ‘힘을 통한 평화’ 맞대응
▶ 미중 구조적 경쟁 지속…전문가 “美 주도권·中 강대국 열망 양립 어려워”
▶ “美 전쟁 수행능력이 억지에 필수”…이란전 부담속 韓日 등 동맹 중요성↑
![[르포] 커지는 北·中 위협 속 美 셈법은…하와이서 본 태평양 전략 [르포] 커지는 北·中 위협 속 美 셈법은…하와이서 본 태평양 전략](http://image.koreatimes.com/article/2026/09/12/202609121629246a1.jpg)
(호놀룰루=연합뉴스) 지난 8일 하와이 미군 기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진주만의 모습.
강렬한 하와이 햇빛 아래 펼쳐진 진주만의 바다는 평온했다. 야자수 너머 바다 건너편에는 퇴역한 회색빛 전함 USS 미주리호가 눈에 들어왔다.
미주리호는 1945년 9월 2일(현지시간) 도쿄만에서 일본이 항복문서에 서명했던 전함이다. 그로부터 약 4년 전인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은 바로 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고, 미국은 태평양전쟁에 뛰어들었다.
미주리호 인근에는 당시 일본의 공격으로 침몰한 전함 USS 애리조나호 위에 세워진 새하얀 애리조나 기념관도 자리하고 있다.
85년 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이 바다를 내려다보며 미국은 이제 중국과 북한을 비롯한 역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태평양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하와이는 미국 본토와 아시아 대륙 사이, 태평양 한가운데 놓인 전략적 요충지다.
서쪽으로는 일본과 한반도, 대만, 필리핀과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미 본토와 연결되는 까닭에 미군이 아시아·태평양 일대의 전력을 지휘·지원하는 핵심 거점 역할을 한다.
이런 특성 탓에 태평양사령부(PACOM)와 태평양함대 등 미군의 주요 지휘부와 군사시설이 이곳에 밀집해 있다.
중동에서는 이란전이 이어지고 있지만, 태평양 한가운데 이곳에서도 미국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전선이 가동되고 있다.
미국의 경쟁 상대인 중국은 군사력을 빠르게 확충하며 서태평양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고, 대만해협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긴장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며 한국을 비롯한 역내 동맹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 전선에 동원되는 수단은 병력과 무기만이 아니다. 법과 법적 논리를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법률전(lawfare)과 정보전, 사이버 영역에서의 경쟁까지 포함된다.
미 해군 관계자는 지난 9일 연합뉴스를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자들과 만나 태평양을 관할하는 미군의 역내 주요 목표에 대해 "첫째는 본토 방어이고, 둘째는 신뢰할 수 있는 억지력을 구축하는 것이며, 셋째는 동맹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태평양에서 전쟁을 피하고 싶지만 "만약 해야만 한다면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역설적으로 언제든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미국이 말하는 '힘을 통한 평화'의 주요 논리다.
중국이 해양 영향력을 넓히려는 움직임은 이런 전략의 배경 중 하나다.
하와이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APCSS)에서 10일 취재진과 만난 알렉스 부빙 교수는 중국이 세계 강대국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먼저 해양 강국이 돼야 한다는 교훈을 과거 강대국의 역사에서 얻었다고 분석했다.
중국 연안에서 일본과 대만, 필리핀을 따라 이어지는 제1도련선과 그 바깥의 제2도련선은 중국 입장에선 대양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지리적 장벽이다.
부빙 교수는 "중국은 지리적으로 포위돼 있어 (과거 강대국인)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영국에 비해 매우 불리한 입장"이라며 "따라서 중국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방위 산업 기반을 강화하며 전쟁 수행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에 대비해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억지 전략에서든 필수적인 요소"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달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무역 갈등 완화와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도 나온다.
그러나 태평양에서 기존의 전략적 우위를 지키려는 미국과 해양 영향력을 넓히며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의 이해가 맞부딪치는 한, 양국의 구조적 경쟁은 계속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와이의 이스트웨스트센터에서 만난 데니 로이 선임연구원은 미중 경쟁을 "서로를 향해 움직이는 두 개의 지각판"에 비유했다.
수십년간 아시아·태평양의 가장 강력한 전략적 행위자였던 미국의 역할과 중국의 강대국 열망이 동시에 충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로이 연구원은 "중국이 점점 더 강해지고 역량이 커짐에 따라 압박은 늘어나고, 이는 중국의 야망이 더 커지는 데 영향을 미친다"며 "반면 미국이 전통적 역할을 계속하는 데 따르는 비용과 위험은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어느 한쪽이 경쟁을 중단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중국이 법적 논리를 전략적 목표 달성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법률전'에도 주목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국내법과 법적 논리를 앞세워 관할권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군사력을 동원해 한 번에 현상을 바꾸기보다 회색지대에서 활동을 누적하고 법적 정당성을 주장함으로써 자국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군 관계자는 "법률전은 추상적인 법 이론이 아니라 오늘날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매우 강력한 수단"이라며 "법치주의를 약화하고 역내 평화와 안보, 안정을 위협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중국의 법률전 영향권 아래 들어 있다. 이 관계자는 중국이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서 구조물을 설치하는 문제 역시 "현상 변경을 통한 통제력 강화 시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위협은 중국과 성격이 다르지만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축이다.
핵과 탄도미사일이라는 전통적인 군사 위협에 더해 최근에는 사이버 공간이 북한의 중요한 활동 무대로 자리 잡았다.
취재진과 만난 미군 관계자는 북한을 러시아,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이버 활동을 벌이는 국가 중 하나로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중국과 러시아 등의 사이버 활동이 주로 국익 확대와 기술 탈취, 지정학적 우위 확보에 초점을 맞춘다면 북한의 경우에는 주로 돈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자금줄이 막힌 북한이 사이버 범죄를 또 하나의 수익원으로 활용하고, 이를 고립된 정권을 유지하고 탄도미사일과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쓰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장기화하는 이란전까지 겹치면서 미국의 전략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여러 전구에서 동시에 억지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은 미국이 보유한 전력과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 전력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역량을 활용하는 데 더욱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하와이에서 만난 관계자들도 역내 억지력은 미군 전력만으로 평가할 수 없으며 동맹국의 전력과 군수·방산 역량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와이에서 둘러본 기관들은 미국이 말하는 '안보'와 '동맹'이 군사력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미군 태평양사령부는 중국 등의 법률전에 대응해 현재 동맹·파트너국 등 13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다자간 법률전 대응 조정그룹을 운영하며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함께 싸우는 것뿐 아니라 평시에 법과 제도를 활용한 현상 변경 시도를 함께 식별하고 대응하는 것 역시 동맹과 파트너십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셈이다.
미 국방부 산하 재난관리·인도적지원센터(CFE-DM)는 쓰나미와 태풍, 지진 같은 역내 자연 재난에 대비해 각국 정부와 군, 국제기구를 잇는 협력 네트워크와 대응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주요 임무로 한다.
조 마틴 센터 소장은 "처음 명함을 교환하는 때가 재난 현장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평소 각국 관계자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 신뢰와 협력 체계를 구축해놔야 실제 위기에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다.
아태안보연구소와 이스트웨스트센터 같은 정부 산하 또는 민간 연구기관들도 하와이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는 각국 학자와 공무원, 전문가들이 역내 안보 현안을 논의하며 장기적인 대응 방향을 모색한다.
군사력뿐 아니라 연구·인적 교류를 통해 축적한 국가 간 신뢰 역시 역내 안정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하와이에서는 미국이 그리는 태평양 전략과 그 안에서 동맹·파트너가 차지하는 의미를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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