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음악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먼 미래처럼 들렸다. 그런데 미래는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생성형 음악 인공지능 Suno에서는 장르와 분위기, 악기, 가사의 주제 등을 말로 입력하면 멜로디와 화성을 만들고 연주와 노래까지 완성한다. 악보를 읽지 못하고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도 자신이 상상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놀라운 기술인 동시에 음악가들에게는 불편한 변화다. 광고나 영상의 배경음악, 간단한 편곡과 데모 작업처럼 작곡가와 연주자에게 돌아갔던 일의 일부를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복잡한 문제는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부터가 모방인가 하는 경계다.
지난 8월 말,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제이슨 이스벨을 비롯한 음악가들이 Suno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Suno가 허락 없이 이름과 목소리, 이미지 등 음악가의 정체성을 이용해 특정 음악가를 닮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게 했다는 주장이다. ‘내 음악을 가져갔다’는 싸움을 넘어 ‘나라는 음악가를 가져갔다’는, 예술가의 존재에 관한 싸움인 셈이다.
한 예술가의 음악적 정체성은 어디까지 그의 것일까. 클래식 음악으로 가져오면 질문은 더 흥미로워진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수많은 녹음을 AI가 학습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의 독특한 터치와 음색, 셈여림의 대비와 프레이징까지 분석해 그가 생전에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작품을 ‘호로비츠답게’ 연주한다면?
호로비츠는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2026년, 새로운 ‘호로비츠의 연주’가 탄생한다면 그것을 누구의 연주라고 불러야 할까. 한 연주자가 평생 만들어낸 터치와 호흡, 음악적 취향을 데이터로 바꾸어 만든 새로운 연주는 모방일까, 창작일까.
법도 아직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저작권청은 AI를 도구로 이용했더라도 인간의 충분한 창작적 개입이 있다면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몇 마디 명령으로 AI가 만들어낸 결과물까지 곧바로 인간의 저작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출간한 소설 《마음의 기억... 흔적》의 후속작을 구상하며, 한 음악가가 남긴 흔적만으로 그의 음악적 사고까지 다시 불러낼 수 있을까 하는 상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소송을 보며 미래를 상상하는 속도보다 기술이 현실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더 빠른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얼마 전 바이올리니스트 김유은과 피아니스트 장성의 듀오 공연을 보았다. 각자의 음악적 색깔을 지니면서도 서로의 소리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두 연주자의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서로 이끌고 따르며 한 사람이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합주한다. 때로는 눈을 마주치고, 때로는 상대의 소리만으로 다음 순간을 이어간다. 악보에는 음표와 쉼표가 있지만 서로를 듣고 반응하는 순간까지 적혀 있지는 않다.
AI에게는 서로의 숨을 읽어야 할 두 연주자가 없다. 하나의 시스템이 바이올린과 피아노, 그 사이의 시간까지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서로 호흡하지 않고도 인간의 ‘호흡’을 재현할 수 있을까.
아마 의외로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수많은 명연주를 분석해 어디에서 기다리고 템포를 늦춰야 하는지, 어떤 음량의 변화가 감정을 움직이는지까지 학습할 것이다. 그렇다면 연주자가 상대의 숨을 느끼며 기다린 0.2초와 AI가 가장 아름답다고 계산한 0.2초 사이에는 무엇이 다를까. 눈을 감고 들었을 때 그 차이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인간의 연주에는 영혼이 있고 AI에는 없다고 말하면 간단하다. 그러나 인간의 연주 역시 수십 년에 걸친 모방과 훈련, 끊임없는 선택과 판단의 결과다. 반대로 AI가 만든 음악을 듣고 누군가 위로받고 눈물을 흘린다면 그 감정을 가짜라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AI가 음악에 던진 가장 큰 충격은 기계가 인간보다 음악을 잘할 수 있느냐는 경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 묻지 않았던 질문을 꺼내놓았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게 배열된 소리인가. 아니면 같은 음표에 그날의 감정과 순간의 마음을 담아내는 인간의 표현까지 음악인 것인가.
언젠가 AI가 인간의 호흡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고, 눈을 감으면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공연장을 찾는 이유는 완벽한 소리만을 듣기 위해서가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사이에 두고 연주자와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며, 그 순간의 감정으로 어제와는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다시는 똑같이 반복될 수 없는 그 순간을 함께 경험하는 것. 어쩌면 AI 시대에도 인간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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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