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갔다가 돌아온 딸아이는 사랑니를 뽑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꼭 뽑아야 하나? 그렇지 않아도 의심이 많은 나는 자식의 몸에 칼을 대야 한다니 신경이 곤두서서 딸아이의 엑스레이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과연 아래쪽 사랑니 두 개가 잇몸 속에서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잇몸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받는 즉시, 옆의 멀쩡한 어금니들을 밀고 들이받으며 엄청난 고통을 안겨줄 터였다. 물론 나오라는 신호를 받지 않고 평생 묻혀 있을 수도 있다. 인류에게는 상하좌우로 4개의 사랑니가 있지만 현대인의 상당수는 사랑니가 아예 없다. 이는 지난 1만여 년 동안 작아지는 턱뼈에 맞추어 사랑니를 만들지 않게 된 적응과 진화의 결과다. 딸아이의 누워있는 사랑니를 지금 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향이었다. 나는 발치 수술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제 법적으로 성인이 된 딸아이와 의사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문제였고, 더 이상 내게는 대리 결정권이 없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사랑니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다. 사랑니는 수백만 년 인류 진화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점점 척박해지는 환경 속에서 뛰어난 잡식으로 살아남은 인류가 믿고 의지한 것은 상하좌우에 3개씩 비치된 12개의 어금니였다. 거칠고 질긴 뿌리부터 고기까지 씹어 먹어야 했던 인류의 강력한 무기는 튼튼하고 큰 턱뼈를 꽉 채운 32개의 치아였다.
1만 년 전 농경이 정착되고 곡물에 의존하는 식생활이 주류가 되면서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곡물에 물을 붓고 끓이면 씹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된다. 음식이 부드러워지자, 음식을 씹어 먹을 때 쓰던 강력한 저작 근육은 점점 쓰임새가 없어졌다. 쓰지 않는 근육은 작아진다. 마찬가지로 쓰임새가 없어진 씹는 근육은 작아졌다. 씹는 근육이 붙어있어야 하는 턱뼈도 덩달아 작아졌다.
문제는 치아였다. 씹는 근육과 턱뼈의 크기는 환경과 음식에 적응하여 작아졌지만, 치아 크기는 유전적으로 정해진 크기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뼈는 받는 힘에 맞추어 모양과 크기가 바뀌지만 치아는 어릴 때 이미 잇몸 속에서 크기가 진즉 완성되어 나온다. 먼저 돋아난 앞쪽 치아들이 비좁은 잇몸에 자리를 선점해 버리자, 가장 늦은 나이에 돋아나는 사랑니는 들어설 자리를 잃었다. 결국 비좁은 잇몸 구석을 비집고 삐뚤어지게 돋아나 주변 치아를 망가뜨리는 현대인의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현대 인류에게 사랑니 발치란,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그토록 유용했지만, 오늘날의 변화된 생존 구조와 충돌할 때 발생하는 불가피한 ‘진화적 청산’인 셈이다.
발치 수술 날짜가 잡히고 딸아이는 걱정이 가득했다. 살면서 기껏해야 예방 주사를 맞아본 게 가장 큰 병원 경험이었던 입장에서, 입안에 마취 주사를 놓고 잇몸 살을 째고 뼈를 갈라서 그 안에 박힌 사랑니를 뽑아낸다는 것은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참고 견뎌내야 하는 일이었다. 어른이 되려면 말이다.
문득 성인식이 생각난다. 많은 문화에서 아이가 온전한 어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고통을 동반하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살을 에어내는 혹한 속에 방치했고, 온몸에 정교한 문신을 새겼으며, 신체 일부를 잘라내거나, 앞니를 돌로 쳐서 부러뜨리거나 뽑아내기도 했다. 육체적 고통을 견뎌내고 살아남아서, 아이는 비로소 공동체를 책임질 수 있는 단단한 어른으로 재탄생한다는 각인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더 이상 이렇게 대단한 성인식을 치르지 않지만, 18세를 맞이하여 사랑니를 뽑아내기 위해 수술대 위에 올라가는 딸아이는 마취가 풀리고 시린 통증을 견뎌내면서 어른이 될 것이다. 딸아이는 인터넷을 검색하여 마취가 풀리면서 어떤 통증이 올지,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찾아서 노트에 정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를 지켜주었던 사랑니는 작아진 턱뼈라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나이가 들고, 인생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내게 물어본다. 과거에는 나를 지켜주는 무기였으나, 변화된 지금의 삶에서는 쓸모가 없어져서 뽑아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떼어내야 한다. 뽑힌 그 자리에는 아물 때까지 살이 아리는 듯한 성장통이 따를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영토를 비좁게 만들고 있는 어떤 사랑니를 품고 있을까. 사랑니가 사라진 자리는 당분간 텅 비어 처연하겠지만, 잇몸은 곧 새살을 채워 그 빈 공간을 단단하게 메울 것이다.
<
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