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현 서울시 야간경제특보와 함께 한 ‘종로 야장’
▶ 서순라길·종로3가·익선동
▶ 어둠 내리면 또 다른 풍경
▶ 골목마다 MZ·외국인들 북적
▶ 서울시 ‘밤경제’ 본격 가동
▶ 여가·관광·상권 활성화 노려
▶ 달빛야장 6곳 새로 선정하고
▶ 박물관 ‘야간결혼식’도 추진
▶ 루프탑 규제 완화 등 필요
서울 종로구 종묘 서쪽 담장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서순라길. 가을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자 밤을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의 발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래된 주택과 공방,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음식점이 어우러진 골목은 어느새 사람들로 북적였다. 야외 테이블마다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분주했다. 조선시대 순라군이 밤마다 도둑과 화재를 감시하며 오가던 길이 새로운 활기를 뿜어내는 곳으로 변모한 것이다. 6일 오후 6시 30분 서순라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지현 서울시 야간경제총괄특보는 이 같은 풍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울이 글로벌 톱3 도시로 도약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밤의 문화’가 K팝처럼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밤 자체가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이 특보와의 만남은 서울시가 지난달부터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 ‘야간 경제’ 정책을 현장에서 직접 듣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동행 인터뷰는 서순라길에서 시작해 종로3가 야장과 익선동 골목으로 이어지며 2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 특보가 가장 먼저 화두로 꺼낸 것은 요즘 새로운 밤 문화로 자리 잡은 ‘야장’.
“젊은 친구들에게 야장은 하나의 문화예요. 단순히 술을 마시러 간다는 개념과는 달라요. 그 분위기와 공간 자체를 즐기러 오는 거죠. 조금 불편하고 기다려야 하더라도 그 과정까지 즐기는 것입니다.”
서순라길의 카페 야외 테이블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사람들은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가을밤을 즐겼다. 한옥 처마 아래에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과 가게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소비 공간이면서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분위기를 경험하는 문화 공간이기도 했다.
“서울은 그동안 낮에 매력적인 도시를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저녁이 된 후 시민들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했어요. 이제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간의 범위를 넓힐 때가 됐죠.”
서울시가 ‘밤’을 새로운 정책 영역으로 주목한 배경에는 시민의 여가활동 확대와 외국인 관광객 증가, 침체된 골목상권 활성화라는 과제가 맞물려 있다.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시간대에 새로운 소비를 창출해 도시경제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낮에만 이용하던 문화 시설을 밤에도 개방하고 관광 명소를 주변 상권과 연결하면 더 많은 경제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민이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쓰는 돈이 하루 평균 약 3108억 원입니다. 야간 소비를 지금보다 4~5%만 늘려도 연간 약 5조 원 규모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서순라길을 빠져나와 종로3가역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도로변을 따라 수십 개의 야외 테이블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그곳을 가득 메운 수백 명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음식 접시와 술잔이 놓였고 좁은 통로를 오가는 종업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영국의 한 여행 매체가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로 꼽을 만한 거대한 야외 축제장에 가까웠다.
다양한 언어가 뒤섞인 테이블에서는 한국식 야장 문화를 즐기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았다. 과거 중장년층의 술자리 문화로 여겨지던 종로3가 일대가 글로벌 명소로 변모한 것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823만 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21.3% 늘었다. 같은 기간 외국인 카드소비액은 약 5조 6000억 원으로 56.8% 증가했다.
뉴욕과 암스테르담에는 도시의 야간 경제를 조율하는 ‘나이트 메이어’가 있고 런던에도 야간정책을 담당하는 ‘나이트 차르’ 제도가 있다. 서울에서도 지난달부터 이와 유사한 역할을 맡은 인물이 이 특보다. 그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두 차례 서울시의원을 지냈고 여의도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 등을 거쳤다. 2022년부터는 서울시 정책기획자문관과 비전전략수석, 기획총괄특보 등을 역임했다.
“도시 브랜딩과 콘텐츠 분야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도시가 더 재미있어질 수 있을지를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서울은 이미 다양한 공간과 문화적 자원을 갖고 있는 만큼 밤이라는 시간을 더하면 시민들이 경험할 수 있는 도시의 폭도 훨씬 넓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종로3가의 화려한 야경이 서울의 모든 골목상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전체의 야간 상권은 오히려 활력이 떨어지는 추세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소상공인 매출에서 야간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40%에서 2025년 36.8%로 3.2%포인트 낮아졌다.
“도심에서도 오후 8시 전후에 마지막 주문을 받는 가게들이 적지 않아요. 인건비와 임대료 부담, 소비 부진 등이 겹친 탓이죠. 야간 경제를 추진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입니다.”
종로3가 야장을 지나 익선동 골목으로 들어서자 밤의 분위기가 또 한 번 달라졌다. 한옥을 개조한 음식점과 카페, 액세서리 가게, 의류 매장에서는 따뜻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쇼윈도를 들여다보거나 물건을 구경했다. 좁은 골목에 어깨가 부딪힐 만큼 인파가 몰렸다. 이 특보는 서울의 가장 큰 야간 경쟁력으로 화려한 시설이나 관광 콘텐츠가 아닌 ‘안전’을 꼽았다.
“외국인들에게 서울을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안전하다는 말을 합니다. 늦은 밤에도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자산인 셈이죠. 안전한 도시 환경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편리한 교통까지 결합한다면 서울의 야간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죠.”
최근 외국인 관광객의 여행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유명 관광지를 차례로 방문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발견한 음식점과 카페·골목을 직접 찾아가는 여행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골목과 밤거리의 분위기가 외국인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감안해 서울시는 광화문과 남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한강 등을 주요 야간 관광 거점으로 육성하면서 주변 상권과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특보는 “결국 만들려는 것은 하나의 관광지가 아니라 서울의 밤을 보내는 코스”라며 “전시와 공연을 보고 야경을 즐긴 뒤 골목에서 식사와 쇼핑을 하고 안전하게 숙소로 돌아가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상을 구체화한 사업이 ‘달빛야장’이다. 종로3가 상권뿐 아니라 서울 25개 자치구마다 특색 있는 야간 명소를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올해는 강남 세로수길과 관악 사당오락달빛야장 등 6곳이 우선 선정돼 상권당 최대 20억 원이 지원된다. 다만 이 특보는 야간 경제의 성과를 단순한 매출 증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에 저녁 7시에 하던 소비를 단순히 밤 9시로 옮기는 것이라면 야간 경제의 효과라고 보기 어렵다”며 “원래 하지 않았던 활동과 소비가 새롭게 생겨나는 것이 진짜 부가가치”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카드 결제 데이터를 50m 격자로 분석하고 통신 기반 생활인구, 체류 인구 데이터와 결합해 상권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야간매출뿐 아니라 하루 전체 매출과 체류 시간이 증가했는지, 인근 상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향후 정책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야간 경제는 단지 먹고 마시는 것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시민들의 문화·여가 활동 선택지를 넓히는 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변화가 공공 문화 시설의 야간 개방이다.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미술관·서울공예박물관 등 주요 시립 문화 시설 8곳은 기존 오후 6시 중심의 운영시간을 오후 9시까지 확대하고 야간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열리는 ‘야간 결혼식’을 추진하고 어르신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파크 골프장에도 조명을 설치해 밤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 특보는 “같은 공간이라도 다른 시간에 다른 쓰임을 만들어내면 새로운 생태계가 생길 수 있다”며 “도시의 공간을 시간에 따라 다르게 활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넘어야 할 장벽도 적지 않은데 우선 옥상 영업 규제 등이 대표적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루프탑 같은 옥상 영업은 고정식 차양 때문에 용적률이 초과되는 등 제약이 있습니다. 중앙정부와 협의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현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현실에 맞게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시는 야간경제위원회 운영과 관련 조례 제정 등을 통해 규제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밤은 우리 삶에 도파민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시작이죠. 시민들이 오늘 저녁을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내일을 다시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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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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