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처럼 든든하게 내 곁에서 나를 도와 주던 큰 딸이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은 타주의 멀고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다고 했는데, 딸아이가 마음의 돛을 나지막이 거두고, 같은 버지니아주의 품 안에 머물기로 정해 주었을 때, 안도와 고마움이 전해졌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며칠 전부터, 후회 없이 사랑하고 미련 없이 보내주리라 다짐하고 나만의 ‘후회없는 딸 사랑 프로젝트'를 계획해 보았다. 먼저 딸의 방과 화장실을 나름 5성급 호텔의 정갈함처럼 정성껏 청소하고 꾸며주었다. 언젠가 함께 여행했던 텍사스 분위기의 레스토랑에도 같이 가보고, 커피향이 좋은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다. 정겨운 온기를 느끼며 팔짱을 낀 채 모녀만의 쇼핑도 하였다. 아이의 새로운 출발에 필요한 목록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며, 기왕이면 가장 결이 고운 품질의 것으로 최선을 다해 갖추어 주었다.
출발하는 날 새벽까지 딸아이와 함께 손발을 맞춰 살림살이를 챙기다 보니, 문득 매번 우리 집을 찾으실 때마다 무엇 하나라도 더 들려 보내시려 바리바리 짐을 싸 오시던 시어머니의 따스한 손길이 가슴깊이 다가와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 어머니 역시 우리를 향해 이런 아리고 정성 어린 마음을 쏟아내셨던 것이었구나.’ 언젠가 내 딸도 나의 품을 떠나 저 넓은 세계로 날아가리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 이별의 시간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깨달았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주체할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와 순간 순간 울컥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소처럼 활기차게 수다를 떨던 내가 어느 순간 말없이 정적 속에 잠기면, 곁에 있던 이들은 내가 또다시 눈물을 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피곤 했다. 문득, 애굽 군사들의 칼날을 피해 어린 모세를 작은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의 거친 물결 위로 가만히 띄워 보내야만 했던 어머니 요게벳의 애절한 심정이 절실하게 느껴졌다.
내 태를 빌려 낳은 자식일지라도, 자녀의 모든 순간을 동행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직면할 때, 결국 무소부재하신 전능자의 손길에 아이를 맡길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을 실감하였다.
Move in Day, 기숙사 입주가 진행되던 주말 이틀 동안, 대학교 주변은 밀려든 차량으로 인하여 도로 전체가 혼잡하였다. 겨우 다다른 캠퍼스 입구에서부터는 어느곳 하나 비집고 들어설 수 없는 이삿짐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 어린 동생들까지 가족의 새로운 출발을 돕기 위해 늦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저마다 견딜 수 있는 무게만큼의 최선의 짐을 들고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차곡차곡 실어 담은 여러 크기의 박스들, 제법 용도가 좋아 보이는 수납장과 제 키만 한 전신거울, 포근한 이불 뭉치, 삐죽 고개를 내민 스탠드 조명, 쓰레기봉투 위로 빼곡히 얼굴을 내민 옷걸이, 그리고 차마 두고 오지 못해 챙겨온 손때뭏은 큰 인형… 짐을 가득 실은 대형 수레를 다 함께 밀고 당기는 동안, 모두의 이마마다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갔다.
자녀를 대학으로 떠나보낸 뒤, 더 품어주지 못한 아쉬움에 하염없이 눈물 흘렸다던 지인들의 후회가 내게는 비켜서길 간절히 바랐건만, 결국 나 역시 그 안타까운 후회 속에 사로 잡히고 말았다. H Mart를 가서 딸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보면 더 챙겨 주지 못해 안타까웠고, 즐겨 먹던 김치 볶음밥이나 LA 갈비를 구워도 함께 먹을 수 없음에 마음이 아려 왔다.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리라’ 다짐했던 딸 사랑 프로젝트는 왠지 아쉬운 실패로 끝이 난 듯하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아무리 퍼주어도 끝이 없는 물독 같아서, 채우고 채워도 늘 허기지고 헛헛하여, 끝내 가득 차지 않는 항아리와도 같다.
딸아이에게 새 터전으로 들어갈 ‘Move-in'의 순간이 필요했듯,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에게도 비로소 가슴 한구석을 비워내며 이별을 마주할 ‘Move-out'의 마음 준비가 필요했구나.
인생이라는 긴 여정은 결국 만나고 헤어지며, 채우고 비워내는 ‘Move-in'과 ‘Move-out'의 끊임없는 섭리라는 것을 다시한번 깊이 깨닫는다. 오늘 가슴을 비워내는 ‘out'이 있기에 다가올 내일은 새로운 기쁨과 성숙으로 가득 채워질 'in'의 순간을 다시금 기대할 수 있음에 위로와 희망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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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복 워싱턴 문인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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