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목회를 하면서 많은 한인 분들이 갖는 관심은 두 가지로 모아지는 것을 보게 된다; 자녀 교육과 은퇴. 몇 십년의 세월을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보내면서 자녀의 대학, 사업의 규모, 은퇴 후 남길 재산 등이 마치 성적표와 같이 이민자의 삶을 평가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처럼 우리 삶은 늘 눈에 보이는 결과로 평가받는다. 하나를 이루면 다음 기준이 기다리고 있고, 그 끝없는 경주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지친다.
낯선 땅에서 맨손으로 시작한 세대일수록 이 압박은 더 무겁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부담이 눈에 보이는 성취로라도 그 선택을 정당화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성공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이 선택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원하는 것일까?
빅터 프랭클은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오래 관찰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쾌락이나 성공을 좇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같은 조건 아래서도 왜 살아야 하는지를 붙든 사람은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고, 그 이유를 잃은 사람은 몸이 멀쩡해도 삶은 무너져 내렸다. 그가 말한 의미는 거창한 성취가 아니었다. 매일의 노동을 대하는 태도, 곁에 있는 사람과 맺는 관계,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취하는 자세,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민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결국 성취의 크기가 아니라, 그 하루하루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소명은 특정한 직업이나 사회적 성취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소명은 방향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이며, 무엇보다 누구 앞에 서 있는가의 문제다. 성경 속에 룻기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모압 여인이었던 룻의 이야기이다. 이방 여인으로 낯선 베들레헴 땅에서 시어머니를 따라 와서 그녀는 먹을 것이 찾아 이삭을 줍는 삶을 살게 된다. 세상 눈으로는 초라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지만 결국 그녀는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된다. 소명은 그렇게 종종 가장 낮고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은 남이 매기는 점수를 향해 달려가지만, 기독교 신앙에서 소명은 부르신 분 앞에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응답하며 사는가를 묻는다. 물론 성공과 소명이 완전히 다른 길일 필요는 없다. 성실히 일하다 보면 성취도 따라올 수 있다. 문제는 순서가 뒤바뀔 때이다. 성취를 먼저 두고 그 안에서 의미를 짜내려 하면, 삶은 조급해지고, 관계는 도구가 되며, 신앙조차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다.
반대로 부르심을 먼저 붙들면, 지금 있는 자리가 보잘 것 없어도, 뒤늦게 자리 잡은 작은 가게에서도, 원하지 않았던 직업에서,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자녀의 모습에서도 그 자체로 소명의 자리가 될 수 있다. 부모로서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다음 세대에게도 건강한 기준을 물려줄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일지 모른다.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누구 앞에서 서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이민 생활의 고단함을 다른 관점으로 보게 할 것이다. 소명은 나를 부르신 이가 있고, 나를 부르신 이 앞에 서 있을 때 깨달을 수 있다. 어쩌면 이민자들이 자녀에게 물려줄 것도 성취의 목록이 아니라 이 질문 자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 AI 시대를 살아갈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취의 목록이 아닌 삶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명은 바로 삶의 방향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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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재 나성북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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