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인공지능(AI) 비전을 발표했다.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이다. 선언에는 다음 네 가지 방향이 담겼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연결해 한국을 글로벌 AI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 만든다. AI를 산업과 공공서비스에 빠르게 확산하며 국제협력을 통해 세계 AI 시장을 넓힌다. 그 성과를 국민 모두가 누리는 ‘AI 기본사회’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인프라부터 확산, 국제협력, 성과 공유까지 큰 그림의 방향이 잘 잡혔다. 문제는 언제나 방향이 아니라 실행에서 갈린다. 그 과정에서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할 문제가 있다. AI가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기업의 생산과 업무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노동자는 새로운 역할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이다.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활용을 확산한다고 해서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채드 존스 교수는 올해 6월 제주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 국제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바로 이 간극을 짚었다. AI는 경제성장을 폭발적으로 가속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혁신처럼 경제를 크게 바꾸면서도 성장률은 서서히 높이는 데 그칠 것인가. 전기와 내연기관, 반도체와 인터넷은 세상을 완전히 바꿨지만 미국의 1인당 소득 증가율은 지난 150년간 연평균 2% 안팎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위대한 기술의 등장이 왜 곧바로 성장률의 폭발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AI는 과연 다를까.
존스 교수는 그 답을 ‘약한 고리(weak links)’에서 찾는다.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만들어지려면 설계와 생산·마케팅·판매·고객관리 등 수많은 과업이 성공적으로 완수돼야 한다. 이 과업들은 서로 대체하기 어렵고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스무 개의 고리 가운데 열일곱 개가 AI로 놀라울 정도로 강해져도 나머지 세 개가 그대로라면 전체 생산성은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사슬 전체의 힘은 가장 강한 고리가 아니라 가장 약한 고리가 결정한다.
역사 속의 위대한 기술들이 실제로 그랬다. 초기 공장들은 증기기관을 전기모터로 바꾸면서도 중앙 동력축과 벨트에 맞춰 설계된 기존 배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전기의 생산성 효과는 각 기계에 개별 모터를 설치하고 공장의 배치와 생산공정, 노동자의 역할까지 새로 설계한 뒤에야 나타났다.
컴퓨터 역시 기기를 들여놓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정보 공유와 의사결정, 업무 분담 방식을 바꾼 뒤에야 기업의 생산성을 본격적으로 높였다. 새로운 기술의 효과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둘러싼 보완적 혁신, 곧 나머지 고리들이 얼마나 빨리 함께 강해지는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AI도 다르지 않다. AI가 신제품의 설계 기간을 몇 달에서 며칠로 줄여도 시제품 제작과 안전성 검증, 부품 조달과 규제 승인이 그대로라면 제품 출시가 그만큼 빨라지지는 않는다. 이때 약한 고리는 기술이 아닐 수 있다. 정리되지 않은 데이터, 기존 시스템과의 연결 문제, 느린 규제와 승인, 경직된 조직구조, 불분명한 책임소재, AI를 활용할 사람의 역량이 모두 병목이 될 수 있다.
약한 고리의 관점은 AI 정책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가 ‘얼마나 빨리, 많이 도입하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면 이제는 ‘산업별로 어디가 막혀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다. 물론 약한 고리를 찾아 개선하는 일차적 주체는 기업이다. 공정과 업무의 재설계, 데이터 정비, 인력 재교육은 결국 현장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느린 규제와 승인, 데이터 표준의 부재처럼 기업의 노력만으로 풀 수 없는 고리도 있다.
정부의 역할은 이런 고리를 푸는 데 있다. 아울러 스스로 진단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도입 비용 지원을 넘어 각자의 약한 고리를 함께 찾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 AI의 기술적 잠재력을 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바꾸는 열쇠가 바로 이 보완적 변화에 있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많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거나 가장 앞선 AI 모델을 보유한 나라가 아니라 경제 곳곳의 약한 고리를 가장 먼저 찾아내고 해결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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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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