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올해로 딱 63년 지기들이 있다. 고 1때 앞, 옆자리에 앉았던 반우들이다. 인생의 보석 같던 여고시절에 우린 클로버 잎 모양 오순도순 추억들을 쌓았다. 졸업을 앞둔 우린 남산에 올라 산 아래 집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살자 약속했다.
각자의 소망과 의지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힘든지 그땐 몰랐으니까. 결국 우린 한국, 일본, 미국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그나마 강과 나는 매일 카톡을 교환하고, 비록 동과 서쪽 끝이라도 미국이란 한 우산 아래 사는 것도 복이려니 한다.
곱상한 인상의 강은, 소풍만 가면 미성으로 감미롭게 노래를 불러 멤버들의 어깨까지 으쓱하게 했다. 또 반 대항 배구시합에선 키 큰 내가 전위센터로, 내 뒤엔 토스가 박력적인 강이 야전사령관 격인 세터로 뛰었다.
그 즈음 강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강의 엄청난 충격과 상실감, 고통의 깊이를 어느 멤버가 제대로 가늠했을까! 지금도 미안하다. 그나마 심지가 곧고 유쾌한 성정이던 강이 침체의 늪에 빠지지 않고, 기타 배우기에 열 올려 다행으로 여겼으니까.
기타학원에서 동갑내기 남학생과 기타를 매개로 관계의 화음을 조성해나갔으니까. 하여간 강은 첫사랑(어릴 때니 풋사랑?)이 된 그 미소년과 지금까지 애틋한 정으로 보듬으며 해로하는 중이다.
마침 내가 조카들의 결혼으로 LA에 갈 적엔 ‘뿌리 깊은 나무’같은 강의 배려와 환대를 받곤 했다. 한번은 그녀와 회포를 풀고는 내가 식당에 지갑을 흘리고 왔다. 강은 두 번이나 식당 탐색 끝에 환한 웃음으로 지갑배달까지 해준 해결사였다.
또 내가 뉴욕지인들과 단체여행으로 LA에 들렸을 때다. 강은 내 일정에 맞춰 호텔과 비행장까지 찾아와 두 번이나 재회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반면 서울멤버의 뉴욕방문길에 합류, 강은 딱 한번 뉴욕에 왔다. 우린 정겹게 비좁은 내방에 모여 허심탄회 삶의 역사를 풀은 지도 어언 17년이 됐다.
내가 LA에 가면 강은 제 집에서 하루라도 묵게끔 주선한다. 나 역시 유렵풍의 별장 형 저택과 건축가 남편이 조성한 정원에 반해 권유에 따른다. 정원 끝 쪽 언덕의 바위들 사이로 시냇물과 작은 폭포들이 돌아 흐른다.
살아 움직이는 건 새, 도마뱀, 다람쥐뿐이지만, 요소요소 실물 같은 동상들로 동화 속의 동물원이다. 낙원이 따로 없다.
식물과 자연사랑으로 이런 ‘전원 교향곡 급’ 풍경들을 창조한 강 남편의 서정성은 감탄 급이다. 거기다 색다른 여행지기념품인 수 십 개의 풍경들이 나뭇가지에서 그네처럼 바람을 탄다. 백 코러스인 새들의 협연까지 받쳐주니 오케스트라 선율이다.
시간이 흐르면 변한다는 마음이, 장구한 세월임에도, 둘의 분위기는 ‘서부전선 이상 없다’로 느껴진다. 서로가 편안하고 다정한 동반자로서 불협화음 없이 초심의 기타화음 그대로인 게 엿보인다. 첫사랑의 마력인가?
친구가 알려준 비결은, 어떤 경우든 절대 해선 안 되는, 선을 넘는 말과 행동의 자제란다. 또 정원의 벤치에 앉아 풍경과 새의 노래를 벗삼다보면 자연치유력인지 마음이 정화된다나. 강의 말을 듣는 순간 ‘성불사의 밤’이란 가곡이 맴돈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 구나...
친구야 넌, 행운의 할머니야! 지금처럼 계속 건강하고 바람직하게 삶을 영위하렴. 나도 항상 문에 매단 풍경 종소리에 내 염원을 실어 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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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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