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타 마리아 디 레우카(Santa Maria di Leuca) - 땅끝에서 만난 사랑, 바다, 피자 한 판
이탈리아 남부 풀리아의 지도를 따라 장화의 굽 끝까지 내려가면, 더는 육지가 이어지지 않는 곳에 산타 마리아 디 레우카가 있다.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가 만난다고 전해지는 살렌토반도의 최남단, 옛사람들이 ‘세상의 끝(Finibus Terrae)’이라 불렀던 곳이다.
그날 아내와 나는 그 땅끝에 섰다. 눈앞에는 수평선까지 막힘없이 펼쳐진 짙푸른 바다가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데 장엄한 풍경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절벽 끝에 나란히 선 젊은 남녀였다. 두 사람은 세상에 자신들만 남은 듯 바다를 바라보다가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었다. 역시 이탈리아의 땅끝은 달랐다. 다른 곳에서는 길이 끝나지만, 이곳에서는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레우카의 진짜 매력은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만으로는 모두 알 수 없다. 우리는 1인당 20유로를 내고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보트 투어에 올랐다. 배가 항구를 떠나자 하얀 집들과 야자수, 해변의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서서히 멀어졌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눈앞에는 오랜 세월 파도가 깎아 만든 절벽과 동굴들이 이어졌다.
석회암 절벽 아래의 바다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맑고 푸르렀다. 햇빛이 닿는 곳에서는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이다가 동굴 가까이에서는 짙은 코발트색으로 변했다. 작은 보트들이 절벽 사이를 오가고, 사람들은 바다 위에서 손을 흔들었다. 사진으로는 그 색을 담을 수 있었지만, 바람과 파도 소리까지 가져올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보트는 아름다운 절벽 앞에 닻을 내렸고, 우리에게 30분의 수영 시간이 주어졌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차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누군가는 능숙하게 헤엄쳤고, 누군가는 물에 둥둥 떠서 하늘만 바라보았다. 나도 살렌토의 푸른 바다에 몸을 맡겼다. 무더운 여름날, 이탈리아의 땅끝 바다에서 즐긴 수영은 그 어떤 유명 관광지보다 생생하고 유쾌한 추억이 되었다.
다시 육지로 돌아온 뒤에는 레우카의 상징인 하얀 등대를 찾았다. 푸른 하늘을 향해 곧게 솟은 등대는 거친 바다를 건너온 배들에게 오랫동안 길을 밝혀주었을 것이다. 그 아래에는 산타 마리아 데 피니부스 테레 바실리카(Basilica di Santa Maria de Finibus Terrae)가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의 끝에 있는 성모 마리아’라는 이름처럼, 바실리카는 육지의 마지막 자리를 조용히 지키고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의 강렬한 햇빛과 떠들썩한 바다 풍경은 문밖에 멈추었다. 고요한 내부에서 성모자 성화와 제단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조금 전까지 바다에서 웃고 떠들던 시간과 깊은 침묵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여행은 이처럼 기쁨과 사색을 번갈아 선물한다.
레우카를 뒤로하고 레체로 돌아온 저녁, 하루의 마지막은 피자였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나폴리 피자의 전통을 이어가는 ‘란티카 피체리아 다 미켈레(L’Antica Pizzeria da Michele)’였다. 나폴리는 물론 페루자 등 다른 도시에서도 맛보았던 반가운 피자였다.
주문한 마르게리타 피자는 접시 밖으로 넘칠 듯 컸지만 한 판에 8유로였다. 자리세 2유로를 더해도 10유로. 미국의 피자 가격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나왔다. 처음에는 “이렇게 큰 것을 어떻게 다 먹을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염려였다. 얇고 부드러운 도우에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바질이 어우러진 피자는 가볍고 담백했다. 한 조각, 또 한 조각 손이 가더니 어느새 커다란 한 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자가 사라진 속도만큼은 우리도 젊은이 못지않았다.
돌이켜보니 그날 하루에는 산타 마리아 디 레우카의 모든 표정이 담겨 있었다. 절벽 끝에서 사랑을 나누던 젊은 연인, 눈부신 해안과 동굴, 푸른 바다에서의 수영, 길을 밝히는 하얀 등대, 땅끝의 고요한 성당, 그리고 레체에서 맛본 따뜻한 피자 한 판.
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는 오히려 삶이 얼마나 뜨겁고 아름답게 이어지는지를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본 바다, 함께 웃으며 탄 보트, 함께 나누어 먹은 피자 한 판. 어쩌면 여행의 행복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평범하면서도 다시 오지 않을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
곽노은 글/사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