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 5학년 때다. 친구들과 구릉지 끝의 경희네 집에 가보니, 뒷쪽이 낮은 민둥산이다. 9살까지 시골서 자랐던 터라 산에 이끌려 혼자 살며시 뒤로 가봤다. 우와! 산등성이 바위주변이 할머니랑 뜯던 나물세상이다.
신나게 채취, “이거 먹는 나물이다”며 동무들한테 보여줬다. 그런데 경희가 난처한 얼굴로 “엄마가 먹을 거라던데”하는 게 아닌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싶어 너무 당혹하고 미안해 새가슴이 콩닥거렸다. 땡볕아래서 십중팔구 죽을텐데 하면서도 다시 심는 수밖에 없다. 원래 자리에다 정성껏 하나하나 펼쳐가며 주위의 모래흙을 뿌렸다. 나중에 경희한테 물으니 다 살아서 엄마도 모르신단다.
내게 돌다리도 두들겨보듯, 뭐든 사전에 신중히 확인할 점을 배우게 한 그 식물은 돌나물이다. 졸업 후 다신 경희를 못 봤지만 아직도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연유다.
사람들이 돈나물, 돗나물로 부르기도 하고, 나 역시 돗나물로 알았지만 표준어론 돌나물이다. 한반도의 산과 들, 돌밭, 바위, 궁벽한 곳의 자생식물이라 얻은 이름이다. 즉 바위에 던져놓아도 잘 자란다니까. 허긴 꽃말도 씩씩함과 근면이긴 하다.
돌나물의 학명은 돌나물 속(Sedum)이라 영어이름도 Sedum과 Stonecrop이다. 세덤은 바위나 땅에 낮게 붙어 자라는 습성의 여러해살이 다육식물의 총칭. 세계 400여종의 다육식물 중, 돌나물은 한국인과는 냉이, 달래와 함께 봄나물 삼총사로 불릴 만큼 친근하다. 돌나물물김치는 웰빙식품으로 제철보약이다.
어릴 적, 진땀수업료를 냈던 돌나물이라 집에다 심고는 열무김치처럼 해봤다. 손맛이 시원찮아선지, 낯설어선지, 가족들의 냉대로 딱 한번으로 끝났지만 말이다. 그런데 육류랑 궁합이 좋아 샐러드, 비빔밥, 잡채, 비빔국수, 피자토핑으로도 애용된단다.
나도 다양하게 섭취시도하고 물김치도 재도전해봐야겠다. 돌나물의 성분과 효능을 살펴보니 각종 성인병방지에 탁월한, 일테면 만병통치식품쯤 되겠으니까.
그런데 돌나물 별명이 의외로 무덤이끼(Graveyard Moss)다. 미국과 유럽의 오래된 관습인, 갓 조성된 분묘 흙이 빨리 초록이 되라고 앉은뱅이 다육식물을 심는데서 파생된 별칭인 것.
세덤들의 밀생(密生)된 뿌리구조로 잡초재생불능이고, 폭우에도 토양유실방지에 유리한 천연매트역할을 해서란다. 이른바 친환경묘지관리식물로 재조명받고. 독일에선 Sedum Roof라고 다육이들로 지붕 덮는 게 인기라나. 유럽의 공원묘지들도 점차 정책화한단다.
돌나물은 특히나 수분, 영양공급부족의 무덤에서도 잘 번식하는 대표적 지표식물이다. 도톰한 잎에 수분저장의 돌나물은 물 없이도 버틴다. 매년 기록갱신 하는 한국폭염을 감안, ‘기후대응형 묘지식물’로 손색없겠다. 또 잡초제거불필요니 일시에 벌초 후 ‘귀성전쟁방지’에도 조금은 일조하지 않을까!
더구나 여름에 작은 별모양의 병아리색 꽃들이 옹기종기 핀다. 천편일률적으로 짧게 이발한 잔디의 삭막함에 비해 화사한 표정의 무덤이라니$. 문득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돌나물로 덮인 할머니, 시부모님, 부모님의 묘소들을.
디아스포라의 삶이라고 몇 십 년째 성묘를 못해서다. 비가 올 적이면 청개구리마냥 더 죄송하고 죄책감이 들어서다. 더욱이 8월은 엄마와 시부모님 세분이 다 하늘로 가신 달이다보니, 더 심란하고 울적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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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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