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익대학교 사진 디자인과 이원철 교수
▶ 개인전 36회· 단체전 200회 이상⋯ 각종 수상경력 다양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 이원철 교수.
▶서로 반대되는 것들 한 화면에 담아⋯충돌 아닌 공존 표현
▶ ‘외로운 황홀함’, 작가 작품세계 이루는 언어
기억을 사진으로 담아온 홍익대학교 사진디자인 전공 부교수 이원철 교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셔터를 누르며 세상을 기록해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기록해 온 예술가이다.
작가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술보다 철학이, 풍경보다 사람이, 또한 화려함보다 진심이 담겨 있어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한 예술가가 걸어온 길과 이교수의 작품세계와 삶을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나무의 성장과정을 통해 인간의 삶과 시간의 흐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
■ 빛은 사라지지만, 사진은 시간을 남긴다
사진은 순간을 기록하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진은 단순히 한 장면을 붙잡는 기술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풍경 너머에 흐르는 시간과 기억, 또한 인간의 삶을 마주하는 가장 진실한 방법이다.
사진과 첫 만남은 고등학교 사진학과였다. 디지털 카메라가 없던 시절, 암실에서 직접 필름을 인화하면서 사진을 배웠다. 아무것도 없던 새하얀 인화지 위에 서서히 하나의 풍경이 떠오르던 순간, 이교수는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빛으로 시간을 드러내는 예술임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필름도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인화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어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밤의 풍경이 긴 노출 끝에 또 하나의 세상으로 태어나는 경험 역시 이 교수의 사진 철학을 만들어 그때부터 사진은 직업이 아니라 삶이 시작되었다.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한 이 교수는 더 넓은 예술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호주 RMIT University로 유학을 떠났다. 새로운 문화와 자연, 다양한 예술적 시선은 사진을 바라보는 세계를 더욱 깊고 넓게 만들었다.
귀국 후에도 홍익대학교에서 사진디자인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면서 작품 활동과 연구를 이어가면서 창작의 현장에서 얻은 경험을 학문으로 확장하고, 학문에서 얻은 통찰을 다시 작품 속에 녹여내는 과정을 통해 예술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2006년부터 대학 강단에 선 이 교수는 홍익대학교를 비롯해 동국대학교, 계원예술대학교, 한국예술종합대학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대진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 한국영상대학교 등에서 후학을 길러왔다.
현재는 홍익대학교 사진 디자인 전공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과 창작을 함께 이어가고 있다.
이 교수는 말하길 자신을 교육자보다 평생 배우는 ‘사진가’ 라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사진을 가르치는 것보다 세상을 바라보며 함께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2004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6회의 개인전과 200회가 넘는 단체전, 그리고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해 쉬지않고 작품의 길을 걸어왔다. 숫자로는 긴 시간 이었지만 작가는 전시 횟수가 아니라 세상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온 시간이었다.
작업의 형식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것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한 화면 안에 담아 내리는 시선이다. 인공과 자연,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 밝음과 어둠은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풍경 속에서 조용히 공존한다.
익숙한 공간도 작가의 시선을 통과하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어디쯤에 머무는 새로운 풍경으로 다시 태어난다.
학창 시절 우연히 접했던 ‘외로운 황홀함’이라는 표현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아름다움은 늘 고요함을 품고 있고, 고요함은 때론 외로움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작가의 사진은 화려하지 않았고 오래 바라보게 되고, 조용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쌓여온 시간은 자연스레 한국 미술계의 다양한 기록으로 이어져 ▲2008년 중앙미술대전 올해의 작가 ▲송은미술대상 ▲2009년 포스코 스틸아트어워드 본선작가상, ▲2014년 수림사진문화상 등을 비롯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서울시립미술관의 지원 작가로 선정돼 국내외 여러 레지던시를 거쳐 작품 세계를 더욱 깊고 넓게 확장해 왔다.
오늘날 작가의 작품들은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영은미술관, SOMA미술관을 비롯해 일본(Kiyosato Museum과 중국(SOKA Contemporary Art Center, 주한 호주대사관 등 국내외 여러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홍익대학교와 여러 기업 및 문화재단에서도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전시가 끝난 뒤에도 또 다른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여전히 화려한 이력보다 한 장의 사진이 사람의 마음을 잠시 멈추게 하는 힘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 사진으로 삶을 묻다, 시간으로 세상을 비추다.
작가의 사진은 서로 다른 소재를 다루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흐른다.
끝나지 않는 삶, 그리고 예술의 시작은 작가의 초기 작업인 ‘unfinished’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존재로 태어나 끊임없이 배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간다. 그래서 사진은 언제나 ‘완성’보다 과정을 이야기한다.
‘에피파니’(Epiphanie Landscape) 2006년 발표한 작품 세계를 한 단계 더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에피파니는 그리스어로 ‘깨달음’을 의미하는 단어처럼, 작가는 어느 날 문득 현실의 풍경 속에서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존재했던 또 하나의 풍경을 발견해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다가온다. 그래서 이 작업을 ‘미지의 노스탤지어와 조우’ 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후 작가의 시선은 자연으로 향했다. ‘The Starlight 경주’와 ‘Circle of Being’에서는 천년을 품은 고분과 묵묵히 계절을 견디는 나무를 통해 삶과 죽음을 이야기했다. 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잎을 떨구는 나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한다. 인간의 삶도 또한 다르지 않다.
긴 시간 빛을 쌓아 올린 2008년 ‘lndustrial Starlight’ 속 공장은 거대한 기계가 아니라 숨 쉬는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인다. 심장처럼 뛰는 동력장치와 혈관처럼 이어진 배관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역시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임을 말없이 들려준다.
2011년 ‘TIME’은 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가리키는 숫자에 맞춰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정말 우리의 삶도 그 숫자만큼 단순할까. 작가는 장노출로 시계바늘을 지워버렸다.
시간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숫자는 측정할 수 없는 삶의 시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기다림의 시간, 사랑의 시간, 그리움의 시간 등 진짜 시간은 시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2019년 ‘The Lightless Lighthouse’ (불 꺼진 등대)는 개인의 성찰을 넘어 사회를 향한 질문으로 이어져 등대는 언제나 길을 잃은 이들을 위해 빛을 밝힌다. 하지만 불이 꺼져 있다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작가는 불 꺼진 등대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를 조용히 비춘다. 비판보다 성찰을, 절망보다 희망을 이야기하며, 다시 서로에게 길이 되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한다.
‘Self Portrait’ ( Fort Lee Museum 2026년) 작품 앞에 선 작가의 모습으로 예술과 삶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사진을 20여 년 동안 작가의 카메라는 풍경을 담았지만 사진은 풍경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은 아니다.
삶을 이해하고 시간을 품으며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긴 사색의 기록이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좋은 사진은 눈을 사로잡지만, 위대한 사진은 마음을 움직인다.

[사진]
“후배들에 삶의 기준되는 작가로 남고싶어”
■ 이원철 교수 일문일답

[이원철 교수]
- 호주 유학은 작품 세계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 왔나?
▲호주 유학은 제 작업의 전환점이 되어 기술 중심의 사진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과 생각을 사진으로 표현하기 시작했고, 첫 작업인 ‘unfinished’ 를 통해 삶과 죽음을 주제로 탐구하고 과제를 위한 사진이 아닌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자세를 갖게 돼 작업의 깊이와 완성도를 한층 높일 수 있었습니다.
- 묘지를 작품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삶을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지 고민하던 중, 죽음의 상징인 묘지를 통해 삶을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었다. 삶 속에서는 삶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지만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더 깊게 성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것이 ‘unfinished’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작업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갖고 있어, 서로 상반된 의미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아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과, 작품 전체에 흐르는 ‘외롭고도 황홀한’ 정서입니다. 이런 대비와 감성은 제 작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특징이라 생각합니다.
-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라 생각합니다. 유행이나 사회적 관심을 쫓기보단 자신의 경험과 질문에서 출발한 작업이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예술가, 어떤 교육자로 기억되고 싶은지?
▲많은 사람이 따르는 기준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며, 누군가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그 작가가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떠올릴 수 있는 삶의 기준이 되는 작가로 남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 사진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예전에는 사진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지만, 지금은 삶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과 예술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소중한 방법이며, 사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예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 작가 사진의 가장 큰 매력?
▲사진은 사실 기록하는 매체이지만, 그 사실성 때문에 오히려 현실이 낯설고 비현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사진만이 가진 독창적인 표현 가능성과 가장 큰 매력을 발견합니다.
<
이근영/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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