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세의 박은주 작가, 아마존에 킨들북 출간
▶ 40여년 지역 사회 발전에 남다른 헌신, 글 통해 서로 위로하고 성장하는 모습에 보람

올해 89세의 나이에 아마존 킨들북으로 영어 자전적 소설 출간한 박은주 작가
베이지역에서 오랜기안 거주하면서 한인사회 발전과 문화를 위해 힘써온 박은주씨가 아마존에 킨들북을 출간했다. 책 제목은 '일곱먼 넘어져도 여덟번 일어나는 삶'으로 그녀의 인생을 정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은주씨는 베이지역에 거주하면서 '미나리 결혼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 롸이더스 클럽을 만들어 한인들의 문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본보가 특별후원한 육아에세이 공모를 주최했다. 또 신사임당 재단을 만들어 매년 올해의 신사임당을 선출하고 있다. 박은주씨와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인생을 돌아본다.<편집자 주>

지난 2024년 신사임당 5대 수여자로 선정된 하혜원씨(오른쪽), 신사임당 수여자로는 1대 박희례, 2대 황부자, 3대 김경자, 4대 김금자씨가 선출된 바 있다.
Q. 최근 아마존 킨들북 ‘Seven Times Down, Eight Times Up’을 출간하셨습니다.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A. 제 삶을 돌아보며 쓴 자전적 소설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칠전팔기’라는 말을 제 인생에 빗대고 싶었습니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다루마상 인형처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삶이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하워드 세이퍼의 도움으로 영어로 옮겨 미국 독자들에게도 전하게 됐습니다.
Q. 89세에 영어 번역서 출간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늦은 나이에 책을 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A.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이제는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사라지기엔 아깝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잘 썼다기보다는, 버텨온 시간을 솔직하게 남기고 싶었습니다.
Q. 작가님의 삶은 개인적으로도 많은 굴곡이 있었습니다. 혼혈 출생, 입양, 예술 활동, 두 번의 이혼과 가족의 상실까지 겪으셨습니다.
A. 혼혈이라는 이유로 받은 상처는 오래 갔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것도 컸고요. 하지만 목사 가정에 입양되면서 안정을 찾았고, 예술이 저를 살렸습니다. 배우와 성우로 활동하며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아픔을 글로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Q. 이후 미국에서 독일인 엔지니어와 재혼하며 안정된 삶을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A. 네, 그 시기를 기점으로 제 삶의 방향이 분명해졌습니다. ‘나를 위해 살기보다, 주변의 재능을 살리는 삶을 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문화 행사, 공연, 출판, 노인극장 창단 등 다양한 일을 하게 됐습니다.
Q. 작가님은 1974년 도미 이후 40여 년간 산타클라라에서 활동해 오셨습니다. 당시 이민 생활은 어땠습니까.
A. 쉽지 않았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늘 빠듯했죠. 하지만 집의 빈방을 내어 하숙을 주고, 결혼 상담소를 운영하며 한 푼 한 푼 모았습니다. 그 돈으로 다시 한인 사회 문화사업을 돕는 데 쓰는 것이 제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Q. 미국에 거주하시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이어오셨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A. 한국에 있을 당시 김활란 박사가 이끌던 주부클럽 중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꽃꽂이와 완구 강의를 받은 경험이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그 덕분에 봉제 완구와 조화 만들기에 익숙했죠. 미국 이민 초기에는 지역 교회에 노인들을 모아 꽃꽂이와 완구 만들기를 가르치며 소소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영어가 자유롭지 않았지만 남편의 도움을 받아 수업을 진행했고, 언어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Q. 결혼 상담소 운영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A. 1985년 이 지역 최초로 결혼상담소를 열었습니다. 그동안 150쌍이 넘는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었는데, 단순한 중개가 아니라 가정을 이루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그 경험들을 정리해 ‘행복한 결혼 만들기’라는 수필집으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인연을 잇는 일이 제 삶에서 가장 보람 있는 봉사 중 하나였습니다.
Q. 재미한국학교 북가주협의회와 실리콘밸리 롸이더스 클럽 지원이 특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A. 한국어와 글쓰기는 정체성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30년 가까이 한국학교를 지원한 것도 그 때문이고, 롸이더스 클럽을 만든 이유도 이민자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글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Q. 롸이더스 클럽은 북가주 문학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죠.
A. 지금까지 10명의 등단 작가가 나왔고, 약 50명의 문인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성취라기보다는 공동체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불을 지핀 사람일 뿐입니다.
Q. 또 다른 커뮤니티 행사로 신사임당 선발대회를 주관하신 점도 주목받았습니다. 이 행사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A. 신사임당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화가이자 문인입니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고, 예술과 인품, 가정과 사회를 두루 아우른 인물이죠. 2007년 한국에서 오만원권 지폐의 인물로 선정될 만큼 국민적 존경을 받는 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사임당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해, 후세에 한국인의 훌륭한 전통을 알리고 싶다는 취지에서 행사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Q. 신사임당 재단 설립과 상 제정으로 이어졌다고 들었습니다.
A. 그 뜻을 구체화하기 위해 신사임당 재단을 설립하고, 매년 현모양처로서 사회의 귀감이 되는 한인 여성을 선정해 ‘신사임당상’을 수여해 왔습니다. 수상자들은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뿐 아니라, 미 주류사회에 한국의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을 알리는 민간 외교사절과 같은 역할을 하며 한인 사회의 큰 관심과 공감을 얻었습니다.
Q. 이러한 공로로 2020년 대통령 표창을 받으셨고, 산타클라라 시에는 작가님의 이름이 새겨진 벤치도 설치됐어요.
A. 과분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역사회가 제 활동을 기억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뿐입니다.
Q. 사후에도 재단을 통해 교육·문화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하셨습니다.
A. 제가 만든 단체들이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재단을 설립해 집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아들과 딸이 재단을 함께 관리하며 북가주 지역 교육·문화 사업을 계속 지원할 예정입니다.
Q. 마지막으로 후배 이민자들과 차세대 한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저는 늘 부족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니,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누군가가 이 길을 이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문화와 언어를 지키는 일에 더 많은 한인들이 나서주길 바랍니다.
<
홍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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